지난 16일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언급한 이른바 '부가가치세율 인상' 문제가 대선으로 가는 길목, 증세와 관련한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비록 김 위원장이 하루 만에 "개인적인 의견"이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최근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도 취임 일성으로 부자들에게 더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이른바 '부유세' 문제를 들고 나오는 등 그동안 표를 의식해 자제해 왔던 증세 논의가 여권에 의해 불이 지펴지는 상황이 됐다.
그동안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복지확대'를 전면에 내걸었다.
지자체 재정난 문제까지 불거져 정부가 시행 1년 만에 수정안을 내놓는 촌극을 빚은 무상보육 문제를 비롯해 반값등록금 등 상당한 재원이 소요될 정책들이 연이어 공약으로 제시되면서 표심을 흔들었지만 이에 따른 구체적인 재원대책을 밝히길 꺼려했던 정치권이다.
하지만 줄곧 소득·법인세 등 세목별 세율인상을 주장했던 야당과 더불어 이제 여권 측에서도 직·간접적인 증세논의를 촉발시키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복지 확대가 필연적으로 증세를 동반한다는 대명제를 인정한 셈. 이로 인해 그동안 감세정책과 세원확대를 통해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정부 논리는 점차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 어떤 증세방안 논의되나? =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명의 주요 대선후보와 측근 관계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증세와 관련된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먼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경우, 최근 증세를 바라보는 입장이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박 후보는 그동안 대체로 감세기조를 유지하되, 비과세 감면부분을 대규모로 손질하고 세원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히는 등 사실상 정부의 조세정책 개편방향과 궤를 같이 했다.
하지만 최근 김 본부장의 부유세 언급, 김 위원장의 부가세 인상 발언 등이 연달아 나오면서 캠프 내에서 조세정책 방향성을 수정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개인적인 사견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이는 향후 새누리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재원확충을 위한 방편, 즉 '밑그림' 작업으로 봐야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새누리당은 이미 고소득층 소득세 증세 관련 입법안을 제시했다.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장이기도 한 나성린 의원은 소득세 최고과표 구간을 종전 3억원에서 2억원으로 낮추는 입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인세 문제는 다르다.
박 후보는 "기업 투자유도, 다른 국가와 경쟁을 고려할 때 가능한 낮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법인세 인상방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가 몸담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소득세 인상방안은 물론 법인세 인상까지 주장하면서 국민 조세부담률을 참여정부 시절인 21%대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우선 소득세의 경우 1억5000만원(이용섭), 1억2000만원(안민석)의 방안이 각각 나온 상태다. 개정안에 따른 연간 세수 증대 폭은 이 의원 개정안은 1조150억원, 안 의원 개정안은 3조1905억원이다.
법인세 최고세율도 현행 22%에서 25%까지 올리는 한편, 각종 소득공제를 제외하고 기업이 최소한 내야하는 최저한세율을 정부안(과표 1000억원 초과기업 14%→15%)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 상황이다.
안철수 캠프 측은 아직까지 조세정책과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다만 안 후보는 그의 저서인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소득세의 경우 고소득층은 이외 되도록 많은 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이른바 '보편적 증세'방안을 제안했고, 법인세는 세율을 높이기보다 비과세 감면을 손질해 중소·중견기업에 혜택을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 부유세, 부가세 인상방안 현실성은? = 그동안 법인세, 고소득층 증세강화로 증세 논의를 주도했던 야권은 이번 여권의 부유세·부가세 등 증세방안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문 후보, 안 후보 측은 모두 "부유세 논의는 이론적이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민주당 측은 부유세 신설 대신 이명박 정부 들어 과세 대상이 대폭 축소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부가세 인상문제는 얘기가 달라진다.
조세연구원 등 전문연구기관에서는 세금을 올려야 한다면 가장 먼저 부가세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이 문제를 고소득층 소득세 증세와 달리 쉽사리 거론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부가세율은 1977년 부가세 제도가 도입된 후부터 줄곧 10%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덴마크(25%), 스웨덴(25%), 영국(20%), 프랑스(19.6%), 독일(19%) 등 유럽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부가세수 비중은 총 국세의 25% 이상을 차지할 만큼 커졌다. 재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세입예산 전망치(59조원) 등을 고려할 때 부가세율 1%p 인상 시 5~6조원 안팎의 추가세수가 예상된다.
하지만 부가세는 농산물, 원자재 등 특정품목을 제외한 모든 재화와 용역에 붙는 대표적인 간접세로 세율인상에 따른 파급효과가 소득계층에 관계없이 동일하다.
부가세는 간접세 특성상 직접세인 소득·법인세보다 조세저항이 낮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서민, 중산층 표심을 좌우할만한 카드인 부가세 인상론에 대해서는 평가조차 꺼릴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따라서 부가세 인상논의는 대선 이전에 구체적인 방향성이 결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는게 정관계 안팎의 중론(衆論)이다. 소득세, 법인세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대선 이후 각 후보군 모두 현 정부와 정책방향이 각기 다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국가 전체적인 재정운용계획 등을 감안할 때 세수효과가 큰 소득, 법인, 부가세 등 3대 세목의 밑그림은 선거결과 이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소득세법 개정안을 따로 내지 않은 것도 이런 정치적인 요건이 고려된 것"이라며 "큰 폭의 세수변동을 동반하는 세제개편은 대선 이후 인수위 논의를 거쳐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부가세 인상방안을 언급한 김종인 위원장 스스로도 "즉각적 부가세 인상이 아닌 다음 정부 복지수요 증가 시 추가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세제개편 차원의 검토대상으로 거론한 것"이라고 밝힌 부분도 이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이달 말부터 본격화될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내부에서도 소득, 법인세율 등 파장이 큰 부분보다는 이를 제외한 지류법안 논의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회 한 관계자는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올해 세법심의에서 소득, 법인세율 인상문제를 결정짓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적인 부담이 있는 증세법안들은 최종결정을 뒤로 미룰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