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싫습니다. 호주나 영국에서 태어나지 못해 훈장은 커녕 고액 체납자란 오명만 쓰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일간지 인터뷰에서 장학기금 거액 기부자 황필상 박사가 기부 세금 폭탄을 맞고 한 말이다.
황 박사는 모교 대학에 장학금으로 215억원을 기부했다가 작년 10월 증여세 연대납세의무자로서 225억원의 납세고지를 받았다.
황 박사는 청계천 빈민촌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26세에 대학에 입학하였고 프랑스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KAIST 교수가 되었다. 1991년에 생활정보지인 수원교차로를 설립하여 돈을 모았다.
황 박사는 2003년 모교에 수원교차로 주식 90%와 현금 15억원 합쳐 215억원의 재산을 기부하였고 대학은 장학재단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설립과정에서 세법 문제를 챙기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있었다.
상증세법 제48조 제1항 단서는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출연재산이 주식인 경우에는 발행주식 총수의 5%를 초과한 부분은 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관여자 누구도 몰랐다.
주위에 세무전문가가 아무도 없었던 것. 결국 수원세무서장은 2008년 과세 여부를 고심 끝에 재단에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하였다.
이 때 부터 이 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세무서장으로서는 세법상 과세요건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책무이니 탓할 이유는 없었다. 장학재단은 이에 대하여 증여세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제1심인 수원지방법원은 2010년 7월 부과처분이 과세요건을 형식적으로 충족하였다고 하더라도 증여세 회피의 목적이 없어 합헌적 법률해석의 요청에 따라 예외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이유로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세법 조항의 문언을 뛰어 넘은 해석이었다. 필자는 바로 위 판결에 대하여 “위헌적 과세처분에 대한 사법구제의 논리구조”라 하여 모 전문지에 판례평석을 기고하였다.
합헌적 해석방법은 헌재의 위헌법률심판권, 국회의 입법권과 충돌 내지 긴장관계에 있는 난점이 있다. 합헌적 해석보다는 처분 자체가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 보장, 과잉금지에 위배되므로 헌법 제107조 제2항에 근거한 처분의 위헌판단권을 행사하면 된다는 새로운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위 판결은 고등법원에서 뒤집혔다. 합헌적 해석이나 처분 자체의 위헌 판단은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조세법령에 있어서 법률적 규율이 정당성 있다는 것만으로는 그에 근거한 처분결과의 정당성까지 담보해 주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위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되어 무려 4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세무서장은 기부자인 황 박사에게 장학재단의 증여세 체납을 이유로 가산세를 포함하여 연대납세의무자로서 무려 225억원의 납세고지를 하였다.
세무서장으로서는 체납이 계속되고 있는 이상 역시 어쩔 수 없는 조치이다. 다시금 이 사건은 언론의 조명을 받아 황당한 사연으로 소개되었다. 대법원의 고민은 이해가 간다. 1심의 견해를 취한다면 법원이 입법자 노릇을 한다고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고, 그 논리가 다른 사건에도 확산되어 간다면 예측 가능성을 해쳐 그 부작용도 우려된다.
그렇다고 세무서장의 손을 들어 준다면 국민에게 법원이 권리구제의 보루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국가가 국민의 기부금의 태반을 조세로 환수하는데다가 선행을 행한 국민에게 225억원의 조세폭탄을 안겨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문명국가에서 용인될 수 있는 조세권행사라고 할 수 없다. 근래 기부금 세액 감면 논쟁이 벌어졌다. 세수 부족을 이유로 기부금에 대하여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변경하여 혜택을 많이 축소하였다.
기부금이 갖는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무시한 탓이다. 미래를 보지 못한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입법이다. 빈부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큰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가진 사람들의 기부문화 전통에 기인한다. 이 사건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황 박사가 고충을 토로한 내용은 이렇다. “기부를 안 했더라면 나는 이런 욕도 보지 않고 여전히 부자로 남았었을 텐데…”
우리가 황 박사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법이 상식을 뛰어 넘어서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