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지글지글 쏟아지는 한여름의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2016년의 여름 더위는 몇 십 년 만의 살인적인 더위라고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가장인 제게 큰 아들은 든든한 기둥이었고 아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복무 중이었습니다. 자칭 명품부대라는 해골마크를 자랑스러워하며 부대개방 행사에 초대를 했습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새벽부터 길을 나섰고 부대소개 동영상과 생활관 및 시설을 구경하고는 한낮의 열기가 조금 식은 후에 가족 모두 철원의 명물 다슬기축제를 구경했습니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운전병으로 적응도 잘 하고 있어 기특하고 고맙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도 어긋나지 않고 반듯하게 성장해주어 또 감사했습니다.
내 등의 세 개의 짐은 가장인 나를 곧바로 서게 했고 강한 물살에도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게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아도 불행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불편한 것들이 있었지만 엄마가 이야기해주는 희망과 꿈을 먹으며 아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새 대학생으로, 군인으로, 고3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뜨거운 여름밤을 화려하게 수놓던 폭죽과 군인들이 단체로 펼치는 멋진 불쇼를 구경하며 다가올 내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예견하지 못하고 그저 행복에 겨워 환호성을 질렀던 시간이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 아이들과 숙소로 잡았던 방갈로에 돌아와 맛있게 라면을 끓여먹으며 웃음꽃이 넘쳐났습니다.
다음날, 새벽 5시가 넘은 시간, 핸드폰의 진동이 끊이지 않고 집요하게 울렸 습니다. 집에 혼자 있던 고3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 집에 불이 났어요. 빨리 좀 오실 수 있으세요?" 그나마 차분하고 태연한 막내의 목소리였고 세 번째 접하는 화재였기에 저 또한 차분하게 대응했습니다. 아들이 안전하니 다른 것은 크게 걱정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2시간을 넘게 달려와서 마주한 현장은 참혹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에 난생 처음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고, 현관의 문은 물론, 주방의 창, 화장실 창틀이 모두 녹아 있고 무엇보다 3분의 2 이상 뚫려버린 지붕에 아연실색했지만, 저는 가장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쓰러지거나 절대로 나약하면 안 되는 가장입니다. 마당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막내아들을 안아주었습니다. 혼자 감당해 내기에는 벅찬 큰일을 의연하게 겪어내고는 내 품에서 놀란 모든 감정들을 일순간 쏟아내며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런 아들을 안을 수 있음에 저는 감사했고, 그나마 아흔살이신 어머니를 센터에서 주무시게 한 선견지명에 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재개발 지역으로 주변에 빈집과 수풀이 많아 피웠던 모기향이 원인이었고 불길은 지붕 속으로 번져 지붕 내부에서만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타던 지붕 아래 아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기특하게도 마당에서 키우던 개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깨웠다고 합니다.
폭탄을 맞은 듯한 실내에는 앉을 공간조차 없었고 막막한 심정이었지만 골목에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토요일인데 우리 집의 화재로 구청과 주민센터는 비상연락망을 통해 긴급구호품을 적십자에서 받아 수송해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천천히 살펴보니 신기하게도 지붕만 뚫렸지 실내는 청소를 하고 지붕을 막으면 생활은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딸에게 놀란 막내를 데리고 밥이라도 먹이라고 외출을 시키고, 엉망진창인 실내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방 하나는 지붕도, 방안도 모두 멀쩡했습니다.
청소를 하니 그래도 사람 사는 공간처럼 조금씩 변해 갔습니다. 지친 몸을 잠시 쉬고 있을 때, 화재를 진압해 주신 동대문소방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시 긴급지원센터에 수리비를 받을 수 있도록 추천을 해 주겠다는 감사한 전화였습니다.
세를 사는 형편에 멀쩡한 남의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자괴감이 들었는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나름 세 아이와 함께 치열하게 살았던 날들이 헛되지 않음에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수리가 시작되기까지는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모든 것에 돈이 필요했습니다. 전기를 사용할 수 없어서 급하게 전기공사를 해야 했고 화재 잔유물을 제거하는 특수마대를 사고 또 샀지만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뚫린 지붕을 덮어야 하는 비닐 등 생각지도 않은 지출의 발생은 끝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초등학교에서 회계직에 근무하는 저는 방학에는 급여가 나오지 않는 직종이라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 때, 9월 말경에 입금 예정이라던 근로, 자녀장려금이 한 달이나 앞당겨 통장에 입금되었다는 알림을 받았습니다.
군대 간 아들이 알려줬던 자녀 장려금과 다른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은 제외되었던 근로장려금도 조건이 변경되어 두 번째 수혜였습니다.
처음으로 2개의 장려금을 한몫에 받으니 평소 제가 받던 한 달분의 월급만큼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수리기간 동안 사는 방의 월세, 이사경비, 특수마대비용, 긴급전기공사, 지붕 철거 때 봉사 오신 동대문소방서 대원님들과 의용소방대원들께 시원한 생수도 사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해보다 빨리 다가온 추석에 특별휴가 나온 큰 아들까지 가족 모두 조촐하게나마 명절음식을 해 먹으며 자칫 우울할 수도 있을 추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 달이나 먼저 입금이 된 장려금은 막막했던 우리 가정에 커다란 언덕이 되어 화재의 무서운 바람을 견디게 해 주었고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촉촉한 가뭄의 단비처럼 커다란 위로금이 되었습니다.
수리를 위해 이사 전 며칠 동안은 쏟아지는 폭우에도 딸아이는 특유의 긍정마인드로 우산을 쓰고 춤을 추었고 정서적으로 너무 힘이 들던 저는 부대에 전화를 걸어 큰 아들이 제 옆에 있기만 해도 커다란 위로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부대의 배려로 큰 아들은 다음날 바로 달려와 많은 궂은 일을 척척 처리해 주었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일의 구심점이었던 막내는 엄청난 일을 겪었어도 자신의 본분인 공부에 최선을 다하고 수시 접수기간동안 알아서 척척 서류를 준비해 원서를 접수했습니다.
행여 힘들어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색하지 않고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2016년 근로, 자녀장려금은 화재를 만나 허우적이던 우리 가정에 사람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사람 도리를 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도록 많은 의미를 담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디딤돌이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입금되었다는 알림을 받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지출해야 할 곳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월급마저도 없던 8월의 막막함과 화재라는 커다란 재해 앞에 악착같이 기운을 잃지 않으려고 버티던 제게 8월 29일 '국고 동대문세무서 500,000원, 국고 동대문세무서 813,000원'은 신의 한 수 같이 하늘이 내려준 동앗줄이었습니다.
화재라는 큰일을 겪은 후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은 안전에도 소홀하지 않기, 작은 도움이라도 늘 나누기. 면제되었던 적십자회비의 납부와 정기적인 헌혈, 굿 네이버스 작은 후원 등을 시작하며 힘들다고 늘 받기만 하던 입장에서 아주 작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려고 애씁니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근로자들에게 이런 제도를 만들어 주신 국세청의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시기에 근로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예정일보다 더 빠르게 처리해 주시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열심히 일해 주셨을까? 일선에서 애쓰신 담당자님들의 따스한 마음도 읽게 되었습니다.
근로자의 입장에서 배려해주셔서 가슴 따스하게 사람향기 나는 행정에 우리 가정은 희망의 노래를 다시 부르며 일어섰습니다. 늘 딱딱하게 느껴지던 세무서의 이미지를 기쁘게 깨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수기 작성자 : 서울특별시 이ㅇㅇ(동대문세무서 출품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