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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화의 무역이야기]

日中 무역갈등의 역사

조세일보 / | 2019.09.04 10:46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막부는 쇄국체제를 풀었다. 문호를 개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이 본의 아니게 개방을 한 이후 경제 군사적으로 일본은 중국은 넘어선다. 관계의 역전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의 만주 침략과 남경학살 등 일본이 행했던 잔혹한 행위에 대한 감정 또한 대일 관계를 좋게 만들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탈냉전 시대를 맞이하면서 상황은 다시 역전된다. 중국이 일본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서로 익숙하지만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일본은 여러 방식으로 이 상황에 대처해왔다. 그 중 하나는 그것이 중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역내 평화를 보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정 위에서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맺어온 것이었다. 이런 가정을 하는 데는 최근까지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던 미국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중국이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합리적인 가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 하에 일본은 중국의 현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공적개발원조 (ODA :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와 차관을 제공하였고, 이러한 원조가 중국 발전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2012-2013년 동안 일본의 대중 원조액은 연 평균 4억 2900만 달러였으며, 중국은 일본 원조 수혜국들 중 아홉 번째였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 중화주의를 지향한다. 그 호의적 가정은 실패했다. 게다가 양국간에는 합리성을 뛰어넘는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같은 힘에 눌리고 있다.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중국이 패권을 가진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방해하는 나라이다. 그렇다고 일본을 힘이나 경제적으로 억누르기에는 여전히 강한 나라이고, 미-일 동맹이 지켜주고 있다. 그 동맹덕분에 일본은 경제력에 비하여 약간의 국방비만 쓰고도 세계의 주도국이 될 수 있었다.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중국과 일본을 묶어놓는 것은 경제이다. 비록 정치·군사적으로는 갈등의 요소가 많지만, 상호 발전을 위하여 경제 이익을 증진할 필요가 크다. 1990년에 시작된 중국의 시장경체 참여이후 중국은 세계 많은 나라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경제 개방 초기 일본은 중국 대외무역의 20%를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였지만, 일본에게 중국의 비중은 4-5%에 불과했다.

2013년에 양국의 비중은 역전되었다. 일본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두 번째 수출 대상국으로 수출 비중의 18.1%, 첫 번째 수입 대상국으로 수입의 21.7%가 되었다. 반면에 중국에서 보면 일본은 제3의 수출 대상국으로 중국 총 수출의 6.8%, 수입은 제2의 수입국으로 총 수입의 8.3%였다. 이러한 양국 간의 무역은 2011년을 정점으로 다소 줄어든 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대중국 수입이 비교적 안정적인 반면, 수출은 변동 폭이 심한 편이며, 2012년 중국과의 영토(다오위다오) 갈등이 주원인이다.

그림

현재 일본과 중국의 무역현안에서 껄끄러운 3가지 문제가 있다. 1) 센카쿠열도 갈등과 불매운동 2) 불공정한 무역행위에 대한 반감. 이러한 문제점은 동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겪는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일본과 영토분쟁 및 미중 무역 전쟁이 크게 보이는 이유는 서로 간의 힘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2012년 극우 민족주의자인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열도를 일본의 개인 소유자로부터 구매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일본과 중국 간 갈등을 암묵해왔던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이에 일본정부는 이시하라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자체 구매 계획하겠다고 하며 개입하였다. 일본 정부가 국유화 움직임을 보이자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은 같은 해 9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장에서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를 만나 자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센카쿠열도에 대한 국유화를 전격 단행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민간교류 등 전 방위에 걸친 강력한 보복에 나섰다. 중국 국내에서는 반일 시위와 도요타자동차와 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이어졌고, 중국 정부의 일본 관광 통제로 일본 방문 중국 관광객도 2012년 8월과 11월 석 달 사이에 43.6%나 감소하여 19만여 명에서 5만 2천여 명으로 급격히 감소하였다. 양국 간의 무역도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2011년 일본의 대중 수출액은 1천620억1천300만 달러였지만, 센카쿠 갈등이 발생한 2012년에는 1천441만7천400만 달러(전년대비 11.0% 감소), 2013년에는 1천290억9천300만 달러(10.5% 감소)로 줄었다.

물론 무역제재는 중국이 일본에 가했지만, 가해자인 중국 또한 적지 않은 손해를 입었다. 2011년 1천841억2천900만 달러였던 중국의 대일 수출액은 2012년 1천884억5천만 달러로 2.4% 증가하는데 그쳤고, 이듬해인 2013년에는 1천808억4천100만 달러로 4% 줄었다. 2011년 일본과 중국 간 무역규모는 출하액 기준으로 약 3784억 달러로 정점을 기록한 뒤 2015년 3033억 달러까지 낮아졌다가 2017년 3294억 달러 수준으로 회복하였고 201년 상반기도 전년 동기 수준을 유지 중이다.

특히 중국이 전자제품 필수소재인 희토류의 대일본 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은 거의 백기를 들다시피 하며 갈등을 봉합하고자 하였다. 이후 일본은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에 설립한 공장을 동남아 등지로 분산시키는 것과 더불어 희토류 재활용 및 인도·베트남 등지에서 희토류 생산 광산을 개발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결국 중국의 대일본 수출도 줄어드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처럼 양측 모두 센카쿠 갈등이 안보는 물론 경제 등 전 분야에 부담되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후 중국의 대일본 경제 제재는 흐지부지시켰지만, 양국 간의 관계가 이전처럼 회복된 것은 아니다.

경제적 유대가 국가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비하여 정치는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정치가 늘 합리적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일관계에서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합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조화로워야 할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 중국인들 다수는 과거 일본인들의 행위에 대해 기분나빠하고 있고, 또 일본 정부들이 그 행위에 대해 명백하게 사과하기를 꺼려한다고 느끼고 있다. 일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품위를 갖추지 못한 개발도상국에 불과하고,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역내 패권국가로 대접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정서가 중일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한, 양자 간 경제 연계를 통한경제발전을 포함한 양국의 상호이익은 부차적인 중요성을 가질 뿐이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홍재화 필맥스 대표

[약력] 중앙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전 KOTRA 파나마무역관, 홍보부 근무
[저서] 무역&오퍼상 무작정 따라하기, 수출 더 이상 어렵지 않아요, 어제를 바꿀 순 없어도 내일은 바꿀 순 있다, 해외무역 첫 걸음 당신도 수출 쉽게 할 수 있다 등 다수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drimt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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