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KPMG, 40년 인연 삼일 대신 삼성전자 감사인으로 선임
전문가들 "독립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향방에 관심 집중
◆…삼성전자가 예상을 깨고 새 외부감사인으로 삼정KPMG를 선택한 가운데, 이번 삼성전자의 선택이 다른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사진제공)
회계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정KPMG는 삼성전자의 2023사업연도 감사인으로 선임됐다. 알려진 계약 기간은 3년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감사인은 1970년대부터 2019년까지 약 40년 동안 삼일PwC였지만,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되면서 지난 3년간은 딜로이트 안진이 감사를 맡았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금융당국이 3년 동안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해주고, 이후 6년은 회사가 자유롭게 감사인을 선임하는 제도인데, 삼성전자가 자유 선임 차례에서 삼정KPMG를 선택한 것이다.
지난 3년은 정부 정책상 어쩔 수 없다 쳐도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번 선택은 의외라는 평이 업계에서 나온다. 40년 '조강지처' 대신 함께 일해 본 적 없는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긴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안진회계법인에서 80억원 안팎의 감사계약을 맺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액수는 큰 의미가 없고, 국내 1위 기업의 감사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젠 빅4 중 누가 맡아도 이상하지 않아"
이번 경쟁 입찰에서도 업계 매출 1위 삼일과 2위 삼정만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진은 지난 3년간 수임을 했기 때문에 제외됐고, 한영은 삼성전자의 IT 관련 컨설팅 등 내부 회계 용역을 맡고 있어, 독립성 문제로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삼정을 선택했고, 삼정은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까지 품으며 국내 반도체 '빅2'를 모두 감사하게 됐다. 삼정은 삼성전자를 품기 위해 일찌감치 만반의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삼정을 택한 배경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온다. 우선 삼성전자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에 따라 지난 3년간 안진과 감사계약을 체결하면서 새로운 회계법인에 대한 경계심을 상당 부분 없앴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는 회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감사인을 바꾸는 것을 꺼려하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난 3년간 감사인 교체에 대해 처음 경험을 해보면서 새로운 감사인도 크게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3년 전 안진이 삼성전자와 계약했을 때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안진이 무리 없이 감사를 해내면서 빅4 정도의 역량이라면 누가 감사를 맡아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면서 "삼성전자도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삼정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빅4 중 누가 삼성전자에 대한 감사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3년 전 안진의 경우 지정된 후 감사를 부랴부랴 준비했는데, 삼정의 경우 감사 준비를 이미 마치고 계약을 체결한 것이기 때문에, 상황 자체가 조금 다르다는 설명도 나온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이재용 회장 체제로 바뀌면서 회계 분야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뉴삼성'이라는 이미지와 회계투명성 제고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파격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번에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로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감사인이 교체됐지만, 이번엔 삼성전자의 선택으로 새 감사인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한 회계법인에게만 오랜 기간 감사를 받다 보면 사실이 아니라도 유착 의혹 등 독립성에 대한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도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 이런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해 선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립성 강화 측면에서 긍정적.. 다른 기업에도 영향 줄 것"
한편, 이번 삼성전자의 선택은 단순 계약이 아닌,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1위 기업에 대한 선례가 다른 기업에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광윤 한국감사인연합회 회장(아주대 명예교수)은 "삼성전자가 삼정을 택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장기적으로 감사를 하다보면 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독립성이 우선이고 전문성은 그 다음인데, 이번에 삼성전자가 오랜 감사 계약 관계였던 삼일 대신 삼정을 감사인으로 선정한 것은 감사의 독립성을 우선시 했다는 측면에서 잘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감사인이 선정되면 시간이 많이 걸려 효율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고, 한국만 왜 감사인을 지정하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소유과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특수한 기업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면서 "특수한 환경에 맞는 감사인 지정제가 우리나라에겐 적합하고 이번 사례가 다른 기업에게도 독립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아울러 "감사인이 지정되는 것에 대해 계약자유원칙 위배라는 주장도 있다"면서 "하지만 감사계약은 양당사자가 아닌 투자자와 채권자 등 제 3자가 엮여 있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산출하도록 하기 위해 지정제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감사인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지난 2019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이 대상이 되어, 주기적으로 감사인을 변경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상장사 166사와 소유경영미분리 대형비상장사 63사 등 229사가 신규로 감사인이 지정된다. 시총 상위 100사 중에는 현대차, SK이노베이션, LG 등 15개사가 포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