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코엑스 컨벤션센터 내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1967년 제정된 '납세자의 날(57회)'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장 풍경이었다. 국민에게 잘 알려진 배우 송지효·김수현을 비롯해 모범납세자(또는 고액납세기업)로 선정된 납세자, 관계 공무원 1000여명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올해는 '특별한 인사'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동안 납세의 날에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납세자의 날 기념식을 참석한 것은 53년만으로, 앞으로는 대통령이 반드시 모범납세자들에게 직접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 자리로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는 대통령의 참석이 "행사를 의미 있게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윤 대통령의 발언은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만든 모양새다. 수천만명의 납세자와는 다소 거리가 먼 특정 세목(종합부동산세)을 거론하면서 이념 논쟁을 부추기고 있어서다.
위상 높아진 납세자의 날…대통령 참석 관례될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7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이덕한 (주)쌍곰 대표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국세청 간부급 관계자는 "(대통령의 참석이)그동안의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는 자리가 되었다"며 당시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대통령의 참석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초 사례다(1970년 박정희 대통령 참석).
또 다른 국세청 관계자는 "그냥 예년처럼 진행됐을 납세의 날 행사가 더욱 뜻깊고 의미있는 행사가 되었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에서 성실납세를 외치면서, 성실하게 납세를 한 국민들에게 무관심했던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적지 않았다. 행사 주체는 기획재정부가 되다 보니, 정부 대표로는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이 얼굴로 비추고 치사와 훈포장을 수여하는 수준에 그쳤었다. 기업친화 정책을 편 MB 정부에서도 대통령은 행사장에 오지 않았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두고 조세·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세권자의 대표는 대통령인 만큼, 납세자의 날 행사에 꼭 참석해서 납세자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행사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축사를 통해 "국가재정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조세 불복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무리한 과세로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계층에 대한 세무조사 부담을 확 낮추는 방향으로 징세 행정이 설계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또 "이의신청, 심사청구, 심판청구 등 조세 불복절차를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언급한 점은, 향후 납세자 권리구제에 중점을 둔 조세정책 마련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불필요한 논쟁 만든 윤 대통령의 입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7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축사에서 "과거의 부동산 세제와 같이 정치와 이념에 사로잡혀 무리한 과세로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첫 납세자의 날 축사인데, 시작부터 전 정권에 날을 세운 발언을 포함한 것이다. 발언이 '적절했느냐 안 했느냐'를 떠나 전 정부의 특정 조세정책만을 콕 짚어 비판한 부분은 이례적인 일이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아서), 과거 정부에서는 조세정책 방향을 언급할 때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큰 틀에서 원론적인 메시지만을 내놨다. 비과세·감면을 정비하겠다든지 탈세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 주된 목소리였다. 납세풍토 조성이라는 행사 취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2019년에는 적극적인(?) 설명으로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홍남기 부총리는 비과세·감면 정비를 언급하며, 그 예로 신용카드 공제를 들었다. 1000만명에 가까운 직장인들의 비난을 받았고, 일부 시민단체에선 반대 서명 운동까지 진행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여전히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한 상태인데, 현 정부는 대기업 감세나 자산계층 감세를 정당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해 현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다 보니,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을 전정부와 대비시켜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정책은 한국사회가 당면한 어려움을 타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정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