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 유럽 대체하고도 남아
중앙아시아 국가 통한 유럽산 화학, 기계류 수입 급증
중국과 홍콩 통한 첨단 칩제품 수입으로 부족함 없어
한국의 러시아 제재 동참 향후 후유증 남길 가능성
코넬 대학 역사학과 조교수인 니콜라스 멀더(Nicholas Mulder)는 아시아의 경제적 무게감이 유럽으로의 석유 수출 손실을 메우고 있으며 중앙아시아를 통한 무역은 제재를 피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등 러시아 경제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방 37개국이 금융, 에너지, 기술, 여행, 해운, 항공 및 상품까지 제한하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력한 제재를 가했지만, 중국과 인도는 석유와 가스를 대량으로 매입해 중요한 시장이 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 후 유엔의 이라크 제재와 같은 이전의 반전 제재처럼 모호한 수단이 동원되지 않았다. 서방의 제재 1년이 지난 지금 몇 가지는 분명해지고 있다.
우선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경제와 미래 성장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붕괴를 야기하지도 않았고 전쟁을 끝내는데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반면 미국 달러 지배가 서방에 의한 금융 제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캠페인의 복합적인 결과는 강력한 드라이브가 예상외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현대적 의미의 경제제재는 20세기 초 유럽이 세계 경제에 대한 절대적 우위의 지배력을 가진 시기에 탄생했고 유럽의 퇴조에 따라 그 힘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이러한 서구의 경제적 지배력은 냉전 기간 제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 완화와 함께 세계 경제의 무게 중심은 동쪽, 즉 아시아로 이동하며 2021년 아시아 경제는 전 세계 명목 GDP의 39%, 수출은 36%, 수입 25%를 차지하는 단일 최대 대륙 블록이 되었다. 중국과 인도는 전 세계 GDP 성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이러한 변화의 전략적 결과를 드러냈다. 미국 안전보장이사회의 한 관계자는 "모스크바에 대한 제재는 경제적 충격과 두려움의 형태에서 비롯되었지만, 단기간의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는 무역 대부분을 아시아로 재조정했고 제재를 무난히 견뎌냈다"라고 밝혀 효과적이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아시아 경제는 새로운 수입원뿐만 아니라 수출의 대체지로도 작용했다. 중국, 인도, 튀르키예, 걸프 국가들, 중앙아시아국과의 무역은 러시아 경제를 제재에서 능히 견딜 수 있는 토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의 양자 간 교역은 29% 늘어났고 올해 1분기에는 39%로 급증했으며 올해 말 교역금액은 2370억 달러에 이를 전망으로 이는 호주, 독일 또는 베트남 전체를 합친 금액보다 크다.
지난해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 연합국과의 교역은 68%, 튀르키예 87% 늘어났고 인도와의 교역은 205% 증가한 400억 달러를 넘었다. 지난해 1월 기준 유럽 국가들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130만 배럴이었고 아시아는 120만 배럴이었으나 올해 1월 유럽은 하루 10만 배럴에 그친 데 비해 아시아는 280만 배럴로 급증했다.
인도는 올해 초부터 하루 140만 배럴을 수입, 단일 국가 최대 구매국으로 부상했으며 중국은 지난해 하루 평균 80만~120만 배럴을 수입했다. 중국, 인도, 튀르키예, 걸프 국가 및 중앙아시아는 유럽의 수출 수요를 완전히 대체했다.
이밖에도 아시아 수출업자들은 서방 공급자들이 떠난 첨단 제조 및 장비 공급의 일부도 메웠다. 중국 기업들은 현재 러시아에서 신차 판매의 40%와 스마트폰 판매의 70%를 장악해 버렸다.
한국을 포함한 서구의 외국인 직접 투자 철수는 러시아 자동차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제3국을 통해 유럽과 일본, 한국 자동차를 수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주로 중국의 신차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과 홍콩은 전쟁 전부터 비축하기 시작한 마이크로칩의 주요 공급국이 되었다. 지난해 러시아 기업들의 반도체 칩 수입액은 2021년 1~9월 대비 36% 증가하는 등 보다 첨단화된 제품 위주로 전환되며 서방의 통제가 먹히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경제는 병행수입과 중계무역의 통로로 활발하게 작용하면서 유라시아 경제연합도 기술수출 제한을 우회하는 경로가 되고 있다. 기계와 화학제품의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 대한 영국의 현저한 수출 증가와 러시아와 이들 국가의 동종 제품 교역증가도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남긴다.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성장 잠재력은 낮아졌지만, 무역 재편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가 금융 및 기술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거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이들 동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 간의 상업적 관계가 제조업과 에너지 무역에 국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재를 무력화하는 힘은 주로 중국, 인도, 중동국가 및 중앙아시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경제적 현실은 향후 서방의 제재라는 무기를 어렵게 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무차별적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것은 향후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