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통장 유치 놓고 증권사 '공세' vs 은행 '수성' 치열
이번엔 소액결제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시장을 놓고 지난달 벌였던 'CMA 신용카드 전쟁'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은행업계와 증권업계가 신용카드에 이어 소액 지급결제 서비스 부문에서 한번 더 맞붙는다.
다음달 3일 일부 증권사가 소액결제 서비스를 시작하고 이어 같은달 31일 13개 증권사들이 이 서비스에 나서면 은행 통장과 증권사 CMA 계좌의 소액결제 기능에 거의 차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공격에 나선 증권업계와 수성 채비를 갖춘 은행업계 사이의 전쟁이 본격화되면 소비자들은 둘 중 어느 쪽이 유리할지를 놓고 저울질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지만, 지나친 경쟁은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금융기관들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소비자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부분이다.
◇소액결제가 뭐길래=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소액결제란 지금까지 은행에서 일반적으로 해 왔던 현금 이외의 지급수단 제공을 의미한다.
어음이나 수표의 결제, 지로나 공과금 자동이체,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한 송금 등이 모두 소액결제에 해당한다.
증권업계에서는 이전에도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내걸고 여러 금융 상품들을 판매해 왔지만, 자동이체를 통한 급여 수령이나 인터넷 뱅킹 이용이 일상화된 일반인들 입장에서 증권 계좌는 증권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 이외에 사실상 장점은 없었다.
일부 증권사는 이전부터 CMA 계좌에서 신용카드 대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증권사와 제휴한 은행에 만들어진 가상 계좌를 통해서 이뤄진 탓에 계좌 이체 시간의 제약 같은 여러 불편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증권사들도 소액결제 업무를 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증권 계좌만으로도 급여를 받거나 자동이체를 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증권사가 휘두를 '고금리 검법'을 막아낼 방패 중 하나를 잃은 셈이다.
◇"우리도 고금리"…은행권, 새 '방패' 든다 = 주식형펀드 열풍으로 CMA 자금이 급증했던 2007년 '머니무브'의 기억을 잊지 않은 은행들은 월급통장에 CMA 못지않은 '고금리'를 부여하면서 고객이탈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통상 급여계좌와 같은 수시입출식 계좌에는 금리가 '제로'에 가깝지만, 고금리가 가능한 역발상 상품으로 CMA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가장 흔한 방법은 일정 조건을 부여해 연 4%대의 비교적 높은 금리를 부여하거나 금융거래 수수료를 면제하는 것이고, 일정 금액 이상을 예치하면 별도의 고금리 계좌로 자동 이체되는 '스윙 어카운트(Swing account)' 서비스도 은행권의 전략 상품 중 하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고금리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수수료 면제와 대출금리 우대 같은 부가서비스가 많아 단순히 금리만을 내세운 증권사 CMA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 관계당국도 은행권에 힘을 실어주는 양상이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CMA 신용카드 발행과 관련, 무자격자에 의한 고객모집 등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해 필요하면 미스터리쇼핑(판매현장 암행감시)을 실시할 계획이다. CMA 신용카드 출시로 CMA로의 자금 이동 등 자금시장 교란 우려가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금감원 등 당국 간 점검회의도 열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으로서는 과도한 경쟁에 따른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를 예방할 임무가 있지만 의욕적인 CMA 마케팅을 통해 급여계좌를 유치하려는 증권사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 과연 좋기만 할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금융사들 간의 '전쟁'은 이론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이익을 안겨주지만 지나친 경쟁은 자칫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불편과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우선 공세에 나선 증권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내분' 등 증권사 내부의 무한경쟁을 들 수 있다.
대다수 증권사들이 소액결제 서비스 제공 시점을 다음달 31일로 설정했지만 동양종합금융증권이 먼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 증권사간 갈등이 빚어진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동시에 서비스를 개시하려는 취지는 비용 절감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하려는데 있다"며 "무한 경쟁으로 비용 부담이 늘면 소비자들은 결국 등을 돌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결제 안정성이 보장되는지 여부도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점이다.
은행업계에서는 전체 증권사 CMA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형 CMA의 경우 지급준비금 규정이 없고 편입 자산의 만기가 짧아 자칫 금융시장이 경색됐을 때 결제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때 5%대를 넘봤던 CMA 금리가 최근 연평균 2.5%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점은 공세에 나선 증권업계를 가장 당혹케 하는 부분이다.
은행 예금과의 금리 차이가 부각되지 않으면 은행의 기존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소액결제 서비스를 준비 중인 한 증권사의 관계자는 "차별화된 서비스나 재테크의 편리함 등을 부각시킬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금리가 높아야 소비자들이 몰려들 것"이라며 금리가 4%대로만 회복돼도 은행과 일전을 벌여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