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반대하지만 일관성은 유지해야"
"세종시 비효율적이지만 꼭 한다"
'탈세총리' 꼬리표는 걸림돌 될 듯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23일 새벽 0시 47분까지 진행된 끝에 끝났다. 인사청문회는 21일, 22일 이틀로 예정됐지만 둘 째날 여야의원들의 공방이 길어지면서 사실상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셈이다. 22일에만 15시간여 동안 질의가 이어졌다.
그만큼 의혹이 많았기에 공방도 끊이질 않았다.
정 후보자의 총리 인준에 대해 부정적인 야당 의원들은 세종시 문제나 감세정책, 4대강 문제 등에 대한 정 후보자의 소신, 병역면제 문제, 스폰서 및 탈세문제, 아들의 국적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여당 의원들은 방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 "세종시는 비효율적"…'매향노' 프랭카드= 정운찬 후보자는 청문회 첫날 "세종시는 국가적으로 볼 때 비효율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이에 둘째 날부터는 청문회장 앞에 충청권 의원들이 '충청도를 팔아먹는 매향노'라는 거센 비난의 플랭카드를 걸고 사퇴를 촉구하는 등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 급격히 확산됐다.
김종률 민주당 의원은 "세종시 수정건설은 초법적 발상"이라며 "후보자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말"이라고 비판했으며, 이틀간의 청문회 내내 세종시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박상돈 자유선진당 의원은 "기대감이 배신감으로 변했다"며 "중앙 행정부처를 그대로 두고 자족 기능이나 채우자는 것이 위성도시 만드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정 후보자간에 세종시 문제를 총리 내정 이전에 논의했을 것이라는 '사전 논의설'까지 제기하면서 따져 물었다.
그러나 정 후보자는 "양심에 따라 '바른말'(세종시 행정비효율)을 했고 청와대와의 사전교감은 없었다. 세종시를 자족도시로 만드는데 온 힘을 바치겠다"며 소신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세종시는 꼭 한다. 국가를 위해 무엇이 좋은지 같이 고민하자는 뜻"이라는 말로 충청지역의 반발을 잠재우려고 애를 썼다.
아울러 "총리가 되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세종시에 대한 변경고시를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 "감세, 찬성은 못하지만…"=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 현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던 정 후보자에 대해서는 여당과 야당 의원들간 서로의 입장과 편에 서주길 바라는 유도질문이 이어졌다.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은 "부자감세 주장은 근거가 없고 국민들이 현혹돼 있다. 감세의 핵심은 경쟁국보다 세금을 높게 내지 말자는 것"이라며 감세 반대론자인 정 후보자를 설득하려 했으나 정 후보자는 "세금이나 금융지원보다는 기술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감세에 대한 부정 입장을 강조했다.
반면 감세 유예가 필요하다는 강운태 민주당 의원의 지적에는 "감세 유예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하겠다"고 분위기를 맞추고, 감세와 재정지출에 따라 국가부채가 4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도 "국가재정을 좀 더 건전하게 운영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희수 한나라당 의원이 감세정책에 대해 재차 입장을 캐묻자 "감세로 득 보는 게 없기 때문에 소득분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학자적 입장을 말하면서도 "(감세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마당에 감세를 하겠다고 했다가 금방 유보한다고 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에 좋지 않을 것"이라며 "적극 찬성은 못하지만 (상황에 따라) 쓸 수는 있을 것"이라는 유보적인 입장을 비추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감세혜택의 70%가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아간다고 했는데 동의하나"라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의 지적에는 "솔직히 최근 경험적 연구를 게을리 해 중산층 이하로 가는지 긍정도 부정도 못 하겠다. 잘 모르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려고 애를 썼다.
□ '탈세총리' 꼬리표 떼기 어려울 듯= 정 후보자는 강연료 소득 등 소득금액을 6000∼7000만원을 누락한 사실을 의원들의 추궁이 있고 나서야 실토했으며, 누락에 따른 세금 1000만원 상당을 인사청문회 첫날인 21일 아침에서야 부랴부랴 세무서에 납부했다.
뿐만 아니라 인사청문 요청안이 국회에 도착한 이후인 지난 15일에도 인터넷 도서판매업체인 '예스24'의 고문료로 받은 수익 중 6000여만원을 종합소득세 합산신고에서 누락시킨 것에 대해 탈루 세액 800여만원을 뒤늦게 납부한 바 있다.
정 후보자는 "종합소득세 누락은 실수였다"며 "누락된 세금은 전부 수정신고 해서 납부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지만, 3년 동안 소득 1억2000만원 이상을 종합소득세 신고에서 누락해 1800여만원을 납부치 않아 온 셈이다.
강운태 민주당 의원은 "국민들도 탈세했다가 나중에 적발되면 그때 가서 수정 신고하면 되는 거냐"며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이 "세법이 어려워 국민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것"이라며 정 후보자의 탈세에 고의가 없음을 강조하며 두둔하기도 했지만 '탈세총리'의 꼬리표는 당분간 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군대 안 간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적법한 면제였다"는 정 후보자의 군면제에 대한 배경을 따지는 질문도 이어졌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정 후보자가 부선망 독자라는 점 때문에 보충역에 편입된 것과 관련, "떳떳한 부선망도 아니고, 양자로 입적한 부선망이면서도 한 점의 의혹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김종률 의원은 군 장성 출신인 정 후보자의 장인을 언급하며 "정 후보자가 병역면제를 받은 시기엔 병무청장 두 명이 정 후보자의 장인과 육사동기였다"며 "정 후보자가 유학 중에 입영통지서가 발부되지 않은 것은 장인의 영향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상돈 의원은 "결과적으로 대통령도 군 면제, 유사시에 대통령을 대행할 총리도 군 면제인데 위급 상황에서 어떻게 군대를 지휘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정 후보자는 "세계 지도자 중에는 군대 안가고도 국방을 잘 한 메르켈이나 대처총리도 있지 않느냐"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 후보자는 계속되는 병역비리 의혹제기에 "저를 방어하는 가운데, 혹시 군대에 안간 것이 잘한 것이 된 것처럼 인상을 드렸다면 국민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다만 "군대 안 간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적법하게 면제받았고, 기피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스폰서 총장이란 말은 빼달라"= 정 후보자가 세계적인 모자제조회사인 영안모자의 백성학 회장에게서 1000만원을 용돈조로 받은 사실이 확인 돼 이른바 '스폰서 총장' 논란도 제기됐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교육공무원법 상 징계양정규정에 따른 청렴의무 위반으로 파면대상"이라고 질책했고, 강운태 의원은 지난해 영안모자 창립 50주년 파티에서 만난 정 후보자와 백 회장, 그리고 두산그룹 박용현 회장(전 서울대병원장)과의 인연을 끄집어 내 정 후보자가 대학총장에 당선될 때 박 회장과 백회장이 힘을 써줬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정 후보자가 백 회장에게서 받은 1000만원을 '소액'으로 표현하면서 "1000만원이 적은 돈이냐, 1000만원을 소액이라는 총리는 서민과 거리가 너무 멀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강운태 의원은 백 회장 말고도 용돈을 더 받은 기업인이 없는지, 특히 총장선거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있는 박 회장에게서 금전적인 지원이 없었는지를 캐물었고, 아울러 백원우 의원은 "박 회장과의 이 의문을 안고 가는 것은 총리가 되고 나서도 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 아들 국적과 배우자의 그림 문제도 쟁점=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정 후보자 장남의 국적문제도 쟁점으로 부각됐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국적을 가진 아들이 한국에서 군 복무 후 최근 한국국적을 상실한 점이 문제가 된 것.
이정희 의원은 "정 후보자의 장남은 2001년 병역을 마쳤지만, 2년 이내에 한국 국적을 신청하지 않아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이에 정 후보자는 "아들이 군대를 제대한 뒤 미국 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했는데 미국 태생이라 비자를 거부당했고, 따라서 출생한 병원에 연락해 출생증명서를 받아 미국시민권을 만들게 된 것"이라며 "아들이 미국을 다녀와 미국 국적을 포기하자고 했으나, 한번 비자 거부하면 재발급이 쉽지 않고, 유학시 학비 감면 혜택 등도 감안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가 이번 일을 당한 것"이라며 "지금은 미국 국적포기를 신청 중"이라고 해명했다.
정 후보자의 부인 최씨가 그린 그림의 판매소득에 대한 탈세 및 재산신고 누락의혹도 제기됐다.
김종률 의원은 "공직자윤리법상 배우자의 미술품도 재산신고 대상으로, 6150만원 어치의 그림을 팔았는데 왜 신고하지 않았는가"라고 따졌고, 이에 대해 정 후보자는 "그런 것도 신고해야 하느냐"며 몰라서 한 일임을 강조했다.
여기에 강운태 의원은 "정 후보자 배우자가 2004년 인사동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했는데, 3일전에 신문에 보도됐다"며 "특히 그림 4점의 가격이 6150만원이라면 1점당 1000만원이 넘는데, 유명 화가의 그림도 아닌데 고가에 팔린 것이 의문스럽다"고 그림을 통한 스폰 의혹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서 정 후보자는 "집사람이 미대 출신으로 기본 소양이 있고, 국전에서 입선을 몇 번 했다"며 "그림과 관련해서는 종소세 신고를 잘못한 것은 잘못이고, 추후 확인해서 납부할 것이 있으면 납부하겠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