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모 푸치니가 남긴 것
자코모 푸치니가 남긴 1억 달러가 넘는 재산은 지속적으로 줄어 든 반면, 그가 남긴 예술 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져 간다.상속재산은 관리를 잘 해도 세대를 거치면서 줄어들 수 있지만, 위대한 음악유산은 품격이 더해지며 지속적으로 가치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흔히 예술가의 재능은 타고나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성악가는 선천적 재능이 중요하다. 거장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정작 후천적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지만.
"저 사람은 태어날 때 신이 그의 목구멍에 키스를 해 주었을 것이다."
파바로티의 천재성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하는 말이다. 그의 노래는 듣는 이를 전율하게 한다.'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원 뜻은 '누구도 잠들지 못한다')를 들을 때는 더욱! 거대한 신체(울림통)에서 공명을 일으키며 휘돌아 나오는 샤우팅은 천둥 소리와 진배없다.
청명한 고음이 벼락처럼 귓전을 때리고 날카로우면서도 오묘한 음상이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 같다.
'공주는…'는 자코모 푸치니(Jacop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이다.
미모의 투란도트 공주가 3개의 수수께끼를 푸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공표한 가운데 칼라프가 성공을 거둔다. 한데 투란도트는 결혼을 거부한다. 그러자 칼라프는 하룻밤 안에 자신의 이름을 맞히면 기꺼이 내 목숨을 바치겠다고 역으로 제안한다.
이에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을 알게 될 때까지 아무도 잠을 자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내린다. 칼라프는 승리를 확신하며 노래를 부른다. 'Vincerò! Vincerò!'(승리하리라, 승리하리라)
예술가의 삶은 대체로 고단하고 배고프다. (파바로티도 그랬지만)푸치니는 예외였다. 그는 생전 얻은 인기로 많은 재산을 모았고 부유하게 살았으며 큰 명성을 얻었다.
사망 당시 푸치니가 남긴 유산은 1억 달러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의 유산은 이탈리아 법률에 따라 직계 가족에게 돌아갔다. 아내(엘비라 푸치니)와 아들(안토니오 푸치니)에게 대부분이 분배되었다.
안토니오 푸치니는 1946년에 사망했는데 미망인 리타가 유일한 상속자였다. 1979년 리타가 사망한 후 남은 재산은 그녀의 오빠인 변호사 리비오 델 안나 남작에게 이전되었다. 델 안나 남작은 1986년에 특정된 상속인 없이 사망하여 상황을 복잡하게 했다.
그러다가 1929년 '시모네타 푸치니'라는 자가 돌연 나타나 법적 분쟁 끝에 안토니오 푸치니의 사생아임을 입증하여 할아버지(자코모 푸치니)가 남긴 유산의 일부를 상속받았다.
이렇듯 자코모 푸치니가 남긴 재산은 상속을 거듭할수록 희석(줄어)되었다.
반면 그가 남긴 음악유산은 다양한 방식으로 보호되며 날이 갈수록 가치를 더해 간다. 특히 자코모 푸치니 재단은 그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공연하면서 많은 수입을 거두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예술 발전을 위하여 기부한다.
'투란도트'는 자코모 푸치니가 제3막의 전반까지 작곡한 상태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완성을 하지 못하고 떠났다. 그가 남긴 초고에 제3막의 후반을 마무리한 이는 프랑코 알파노(Franco Alfano)라는 작곡가였다. 음악유산의 상승효과가 제대로 발현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올해로 자코모 푸치니가 사망한 지 101년이 되었지만 그를 흠모하는 음악 팬은 늘어나고 명성은 품격을 더하여 높아만 간다. 예술적 유산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 희석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