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 "이제 더 이상 원펌 추진하는 국제펌 없을 것"
○…국내 Big4 회계법인 가운데 3·4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정KPMG와 한영E&Y의 합병설이 터지자 주판알 튕기기에 분주했던 회계업계는 곧바로 삼정KPMG가 '합병무산'으로 가닥을 잡자 이제는 이번 합병설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며 대체로 크게 기뻐하는 분위기.
20일 회계업계 사람들은 "오늘 오전 합병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는데, 점심을 먹고 돌아와 합병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는 모습.
이들은 "이번 삼정KPMG 합병이 무산된 배경에는 외국의 거대 회계법인들이 국내 회계법인을 완전 장악해서 직접 경영하려는 시도를 무산시킨 의미가 있다"며 "국내 회계법인들이 그동안 노력해서 만든 위상을 만천하에 알린 계기도 됐다"고 의미를 부여.
회계업계에 따르면 지난밤 한영E&Y는 삼정과 합병하자는 결정을 내렸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세계1위 회계법인인 KPMG인터내셔널이 크게 긴장한 나머지 삼정회계법인 측에 곧바로 E&Y가 제시한 사항에 플러스 알파를 제의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삼정회계법인이 KPMG와의 결별을 한 때 고민했던 것은 KPMG가 지금까지 유지했던 '멤버 펌(Member Firm) 대신 삼정회계법인을 직접 경영하는 '원 펌(One Firm)'을 추진했기 때문.
멤버펌 관계에서는 삼정이 KPMG 브랜드와 감사기법 등을 활용하되 법인운영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은 독자적으로 행사해 왔지만, 원펌이 된다면 독자적인 의사결정이나 회계법인 운영은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갈등이 팽창돼 왔다는 것.
그러나 삼정이 한영E&Y와의 합병이 급물살을 타게되자 국내 시장을 잃게 될 우려가 있는 KPMG 측이 결국 원펌추진을 포기하고 멤버펌 제휴관계 유지와 3년간 1500만달러 지원하는 방안, 나아가 플러스 알파를 약속했다는 설까지 회계업계에 나돌고 있는 상황.
플러스 알파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삼정KPMG가 앞으로 플러스 알파를 무엇으로 할지를 두고 현재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상당한 옵션이 삼정에 주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회계업계의 분석.
삼정 고위관계자는 "삼정은 더 이상 결정을 늦출수록 한영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고,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와 삼정의 발전 및 고객에 대한 고품질 서비스 등을 고려해 합병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
이와 관련 회계업계는 "이번 삼정KPMG의 합병무산은 국내 회계법인 시장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
이들에 따르면 현재 Big4 회계법인 가운데 원펌으로 운영되는 곳은 한영E&Y이고, 나머지 삼일·안진·삼정은 멤버펌이었지만 2∼3년 이내에 모두 원펌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을 국제펌들이 세우고 있었던 것.
그러나 이번 KPMG와의 협상과정에서 그동안 을의 입장에서 끌려 다녔던 삼정회계법인이 이제는 확실하게 갑의 입장에서 협상했고, 이는 곧 원펌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회계법인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회계업계에 지배적.
회계업계 관계자는 "이번 삼정KPMG가 국제펌인 KPMG와의 협상에서 협상력을 발휘한 것은 매년 20% 이상의 성장을 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국제펌들도 한국 회계법인들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계기가 된 것같다"고 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