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서울회의는 환율해법의 시험대다

3주 앞으로 다가온 G20(주요20개국) 서울 정상회의가 '환율전쟁터'로 돌변하게 됐다.

환율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예정에 없던 정상회담도 일부러 열어야 할 판에 이미 예정된 G20 서울정상회의가 이를 논의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G20의장국인 한국 정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G20정상회의에서 몇몇 특정국가의 환율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견지했었다. 환율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단견의 소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촉발된 환율전쟁은 얼핏 중국과 미국 두 나라 간 문제로 비쳐 질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그 피해가 아시아와 중남미 등 신흥경제권 국가들로 글로벌하게 확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경제성장률과 금리 등으로 따질 때 미국과 주요 신흥국가들 간에 현격한 갭(간격)이 있다. 그 차이만큼 미국 달러화는 신흥국가 통화들에 대해 가치가 떨어져야한다.

모든 나라 정부가 시장개입 없이 환율 결정을 시장에 맡겨놓는다면 달러가치는 시장원리에 따라 절로 조정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미세조정' 이던 '환율조작'이던 어떤 형태로든 시장에 개입해 방어벽을 치려든다.

미국과 중국 간에 환율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달러절하의 압력은 미국과 교역관계가 많은 다른 신흥국통화로 옮겨간다.

미-중 간 '물꼬'가 트이지 않으면 다른 통화와의 조정 쪽으로 물이 흘러가는 이치다. 브라질과 칠레 콜롬비아 페루 등 중남미 국가와 호주 한국 등에 달갑지 않은 평가절상압력이 밀려들고 있다.

신흥국들이 취할 수 있는 대응방안은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개입의 '실탄'인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자본 유출입을 통제하는 세 가지 길밖에 없다. 그러나 통화개입과 자본통제의 파괴적 악순환은 모두를 패자(敗者)로 만든다는 데 세계의 고민이 있다.                   

이 과정에서 왕년의 'G5'와 신흥국 간의 편 가르기 게임 양상도 벌어진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 유럽연합(EU)이 합세하고, 일본의 시장개입을 미국이 사실상 방조하면서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을 비난토록 하는 등 연합작전의 낌새도 감지된다.

환율전쟁의 본질은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가치의 추락에 있다. 미국이 경기부양을 이유로 이른바 양적완화(QE)를 통해 달러를 대량으로 찍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제1라운드 양적완화로 미국의 본원통화는 배로 늘었다. 게다가 내달 3일 단행될 제 2라운드 양적완화(QE 2)로 1조 달러가 풀릴 예정이다. 이 'QE2 달러폭탄'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유동성 쓰나미로 밀어닥치게 된다.

미국의 달러 찍어내기에는 여러 목적이 숨어있다. 달러가치를 낮추어 수출을 늘리려는 의도가 첫째다.

달러가 흔해지면 물가가 오르고 인플레를 유발한다. 인플레로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이 대외적으로 지고 있는 빚이 그만큼 탕감된다. 달러가 싸지면 이자율이 싸지고,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은 이자가 싼 통화를 선호하게 돼 달러화를 찾게 된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치가 자연스럽게 공고해지는 효과도 있다.

미국은 과거 두 차례 환율전쟁을 통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털어낸 적이 있다.

1971년 8월 달러화의 금 태환 정지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12월에는 달러화 가치를 7.89%나 급락시키며 브레튼우즈 체제를 종식시켰다. 당시 마르크강국 독일은 미국의 압박에 1969년 10월에 마르크화를 8.5% 절상 하는 등 4년 여 사이 66%를 절상시켜야했다. 

1985년 9월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G5 재무장관들이 모여 일본과 독일의 통화가치를 대폭 절상시킨 플라자합의가 제2차 환율전쟁이었다. 두 차례 석유파동의 후유증으로 쌍둥이 적자에 시달렸던 미국은 일본압박에 나서 엔화를 65% 절상시켰다.

일본은 급격한 절상에 따른 가격경쟁력 상실을 만회하기 위해 제로 수준의 금리인하 등 경기부양책을 쓰다가 증시와 부동산에 버블이 끼고 1993년 버블이 터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세계1위 경제대국 자리를 넘보던 일본을 플라자합의 한방으로 날려버릴 정도로 환율전쟁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었다.

그러나 이번 3차 환율전쟁은 사정이 다르다.

1차 표적인 중국은 과거의 독일이나 일본처럼 미국에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플라자합의 같은 '한 방'으로 위안화 30-40% 절상을 받아낼 만한 힘도, 국제적 리더십도 지금의 미국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 등 흑자국은 국내소비를 촉진시키고, 미국 등 적자국은 지출축소와 구조개혁으로 적자를 축소시키고, 신흥공업국들에게는 금융 불안을 줄여 줄 수 있는 안전망확보 등 다각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조율이 필요하다.

글로벌 불균형이 시정되지 않는 한 미국은 달러를 찍어 적자를 메우고 경기를 띄우려는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잖아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돈과 오일머니 차이나머니 등이 사냥감을 찾아 신흥국 금융시장으로 경쟁적으로 몰려드는 판이다.

보호주의적 대응의 악순환을 막으려면 G20 정상들이 서울에 모여 중지(衆智)를 모아야하고 그런 의미에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서울에서의 중지 모으기 '(Collective Seoul-searching)라는 조어도 만들어 썼다.

우리 정부는 이번 주말 경주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중재를 시도해보고 조정이 결렬되면 내달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정상간 담판을 통해 '서울 선언' 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금융안전망 등을 포괄하는 '코리아 이니셔티브'와 함께 환율갈등을 해소하는 정상들 선언이 나온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러나 오늘의 G20에게서 25년 전 플라자합의 당시의 G5와 같은 동질성과 결속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구체적 합의는 어렵다 해도 개별국가의 환율정책을 포함해 거시정책 미시정책 경쟁정책들을 연계하여 종합적으로 논의토록 유도하고 자국이기주의에 입각한 환율정책을 버려야한다는 공감대와 분위기부터 조성해야한다.

G20의장국으로 한국은 운신의 폭이 좁은 데 반해 높은 수출의존도 때문에 환율전쟁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높다. 환율갈등이 심화된 지난달 초 이후 원화는 가파르게 절상되고 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저평가되고 있는 아시아통화'라는 누명도 쓰고 있다.

의장국으로서는 적잖은 부담이다.

환율해법을 중재하면서 한편으로 원화저평가에 대한 바깥의 오해를 털어내고, 개별국가 단위의 자구책은 그것대로 강구해야하는 이른바 3중고다. G20 서울개최의 '영광' 이 가져다주는 업보라고나 할까.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