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A씨는 B씨에게 7000만원의 뇌물을 자신이 아닌 담당 공무원에게 직접 주라고 지시했고 이후 사법당국에 적발, 제3자 뇌물공여죄로 지난해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년이 지난 올해 5월, A씨에게 또 하나의 죄 값(?)이 청구됐습니다. 법원이 아닌 세무서에서 뇌물 7000만원에 대해 3554만원의 종합소득세를 내라는 세금고지서였습니다.
A씨는 자신이 건설사 대표와 담당공무원 사이에서 뇌물을 주고받도록 다리를 놓아준 죄가 있긴 하지만, 정작 한푼도 구경하지 못했던 뇌물에 대해 세금까지 내라는 것은 억울하다고 주장하며 조세심판원에 불복청구를 제출했습니다.
도덕적·윤리적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뇌물수수를 조장한 A씨에게 징역형은 물론 그에 상당하는 벌금까지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자신이 받지도 않은 뇌물에 대한 세금까지 내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처분일까요?
□ "나는 단지 브로커, 세금까지 낼 순 없다"= 현행 소득세법에서는 '뇌물'을 기타소득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으며, 받은 뇌물에 대해 소득세를 과세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A씨는 담당 공무원이 뇌물을 받았을 뿐 자신은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며, 받지도 않은 뇌물에 대해 소득세를 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던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A씨가 B씨로부터 공사비 인상분을 결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담당직원에게 7000만원을 건네게 한 사실이 인정됐습니다.
이에 A씨는 "법원 판결에서도 알 수 있듯이 7000만원의 뇌물은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담당직원이 받은 것"이라며 "법원에서 나에게 뇌물을 몰수하거나 추징한 사실이 없으므로, 과세관청이 뇌물에 대해 소득세를 과세한 처분은 부당하다"고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 "A씨, 자신의 이익을 위해 뇌물수수 지시했다"= 그러나 과세관청은 A씨가 뇌물수수를 지시한 배경에는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며 맞섰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살펴본 결과 A씨가 말했던 내용과 상당부분 다른 점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실제로는 A씨가 먼저 B씨에게 수 차례에 걸쳐 공사비 인상분 결제를 미끼로 금품을 요구했으며, 이를 견디다 못한 B씨가 A씨의 지시에 따라 담당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담당공무원에게 준 뇌물은 그 용도가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사건이 벌어질 당시 B씨는 사기사건과 함께 A씨와 연계된 뇌물수수 혐의로 금융계좌 추적 등 조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7000만원을 건네 받은 담당공무원은 A씨 지시로 B씨에게 변호사 선임에 사용될 돈(7000만원)을 받아 서울에 있는 한 변호사에게 전달한 죄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과세관청은 "A씨가 B씨에게 변호사 비용 7000만원을 담당공무원에게 주라고 지시한 것은 본인의 혐의를 벗기 위한 면도 있다"며 "직접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A씨에게 소득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우므로 소득세 과세는 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 심판원, "과세처분 부당하다"= 이 같은 과세관청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조세심판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도덕적 입장보다는 소득세법 등 관련 법령에 비춰볼 때 A씨에게 세금을 부과할 만한 '경제적 이익'이 없었다는 판단입니다.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소득세법상 과세대상이 되는 소득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납세의무자가 현실적으로 이익이 얻어 세금을 납부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돼야 한다"며 "A씨에게는 이 같은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심판원은 "A씨는 직접 뇌물을 받지 않았고, 담당공무원을 통해 직접적인 이익을 받은 흔적도 없다"며 "법원 판결문에서 해당 뇌물이 A씨의 이익을 위한 면이 있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이는 간접적 이익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A씨에게 소득세를 과세하지 않는다는 심판원의 결정은 세법적 관점에서 볼 때 타당한 결정입니다.
그러나 비록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A씨가 이익을 취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측면을 감안한다면,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참고 심판결정례 : 조심 2010구25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