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할 때 분명한 재산의 이전인데도 불구하고 차명계좌를 허용하는, 대한민국형(型) 금융실명제로 인해 과세당국은 부유층의 편법을 잡아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나라는 최고 50%의 높은 상속·증여세율을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층의 입장에서는 차명계좌를 이용한 '편법'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제도(금융실명제)가 낳은 부조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돈 많은 어머니 덕분에(?) 학생신분으로 과세당국과 '다툼'을 벌인 A씨의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명목을 떠나, 양측의 다툼은 차명계좌가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 "26세 학생, 세금 7000만원을 두들겨 맞다"= 1985년生, 올해 한국 나이로 26세인 A씨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지난 3월, A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합니다. 7170만원의 세액이 찍힌 세금통지서가 날아든 것입니다.
세목은 '증여세'. 어머니가 의사인 A씨의 기억에는 어머니로부터 돈을 증여받은 사실이 없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A씨 이름으로 만들어져 있던 '통장' 때문이었습니다.
국세청 조사결과 학생신분에 불과한 A씨 통장에서 지난 2005년부터 몇 년간 무려 10억원 가량의 거액이 오고간 금융거래 흔적이 포착된 것. A씨는 어머니께 명의만 빌려드렸을 뿐(?), 정작 본인은 그 통장에서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 "어머니께 명의만 빌려줬을 뿐이다"= A씨의 주장을 더 들어보겠습니다. A씨는 일단 국세청이 과세근거로 꼽은 자신 명의의 통장 거래내역 전부가 본인이 의도한 바가 아니며 관여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명의만 빌려줬을 뿐, 실제 계좌를 개설하고 거래인장에 날인한 실질적인 통장의 주인은 어머니라는 것. 스스로 '차명계좌'라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죠.
따라서 어머니 명의 계좌에서 출금돼 문제가 된 본인 명의의 통장에 입금된 돈은 모두 어머니가 소유한 계좌들간의 '자금이체'에 불과하고, 실제 A씨가 증여받은 돈은 한푼도 없기 때문에 세금을 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현행 법상 현금의 증여시기는 '인도한 날 또는 사실상의 사용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A씨는 본인이 사용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과세당국이 단지 본인 명의의 계좌에 입금된 날을 증여일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A씨가 지난 2000년 1억원 상당의 현금을 어머니로부터 증여받아 증여세를 신고한 사실이 있으며, 2005년에 입금된 3억460만원 상당의 금액에 대한 증여세 부과처분도 받아들인 사실이 있다고 강변했습니다.
또 금융거래법상 실명확인을 통해 예금주로 등록된 A씨를 예금계약의 당사자인 사실은 분명한 것으로 봐야하며, 통장을 개설해 준 금융기관에서 어머니가 대리로 개설한 것을 용인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반드시 이를 차명계좌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입장.
특히, 국세청은 "A씨가 지난 2006∼2009년 귀속 종합소득세 신고기간 A씨 명의의 계좌에서 발생된 이자 및 배당소득 등의 금융소득을 본인소득으로 신고한 사실도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A씨 계좌에 입금된 원금이 어머니의 자금인 것을 숨기기 위해 여러 계좌로 분산 입금한 '자금세탁'의 흔적도 찾아냈기 때문에 A씨가 어머니로부터 현금증여를 받은 것으로 판단해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 다툼의 결론, 심판원 "과세 정당하다"= 양측이 한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섰던 이 싸움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됐을까요. 조세심판원은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다만 A씨의 '차명계좌' 주장보다는 국세청이 입증해 보인 '자금세탁' 부분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입니다.
심판원은 "A씨 계좌에서 출금된 자금흐름을 볼 때, 어머니 명의의 각기 다른 수 개의 계좌에서 출금된 금액을 수표 1매로 교환해 A씨를 비롯해 동생 B씨 등 여러 명의 계좌에 분산 입금하는 방법 등이 확인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어머니가 A씨의 자금을 실질적으로 관리했다기보다는 A씨에게 현금증여를 하면서 증여 사실을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금융거래를 분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2005년 같은 시기, A씨 명의를 비롯해 어머니 명의의 또 다른 2개의 계좌에 각각 3억460만원이 똑같이 입금됐고, 이 돈의 흐름이 A씨 계좌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서는 차명계좌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A씨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심판원은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어머니 계좌에서 흘러나간 돈이 A씨의 계좌에 입금된 뒤 증권 및 채권투자에 지속적으로 사용됐고, 이로 인한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해 A씨가 해당연도 종합소득세 신고시 신고했던 점에 비춰 'A씨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심판원이 내놓은 기각사유였습니다.
참고 심판결정례 : 조심 2010서2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