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고법에서 금복주 등 9개 소주업체들이 공정위가 담합을 이유로 2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에 반발해 제기한 행정소송 2차 공판이 열렸다.
1차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2차 공판 역시 소주업체들의 가격인상시 사전담합이 있었는지에 대해 소주업체들과 공정위 간의 치열한 설전이 이어졌다.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한 소주업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소주가격 인상결정은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담합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두 업체도 아니고 11개나 되는 소주업체들이 기업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의 하나인 가격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기자가 듣기엔 너무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렸다.
소주업체들의 주장은 이렇다.
소주업체들은 술의 주원료인 주정가격과 운반비, 노무비 등 각종 물가상승 등으로 원가부담압력이 높아져 가격인상이 필요해지면 회사 내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세청에 찾아가 가격인상을 요청한다는 것.
이상한 것은 그마저도 11개의 소주업체들 중에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J업체의 가격인상요청 사항만 국세청의 검토대상이라는 것이다.
국세청이 J업체의 가격인상요청을 수용(승인)하면 나머지 업체들은 시중에 배포된 J업체 주류가격인상 안내문을 보고 눈치껏 가격인상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세청의 최종 승인가격도 업체들이 요청한 인상률을 모두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세청이 물가를 감안해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승인해 준다"고 전했다. 실제로 소주가격은 지난 10년간 물가상승률 대비 58% 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더욱 이상한 일은 11개 소주업체 중 일부가 일정기간내에 가격인상을 하지 않으면 국세청이 타업체를 따라 가격인상을 하도록 독려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모 소주업체 임원은 "2008년 12월 28일 J업체의 가격인상을 알고 있었고, 국세청으로부터 가격인상 권고를 받아 1월 12일 가격인상을 결정해 각 거래처에 3~4일 전에 미리 통보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12일 소주가격이 오를 것을 안 거래도매상들이 가격 인상 전에 일정물량을 공급해줄 것을 원해 주문량을 12일까지 소화하지 못해 국세청에 예정보다 일주일 뒤인 19일에 가격을 인상할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주업계 관계자는 "보통 J업체의 가격인상이 결정되면 다른 업체들도 일정 기간안에 소주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며 "일정기간 인상하지 않는 업체가 있으면 국세청이 재촉하여 가격인상 업무를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이는 가격인상 계획을 가지고 있는 업체들이 인상을 서둘러 결정짓지 않고 차일피일 미룰 경우 자칫 사재기 등 유통질서가 문란해지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국세청의 고육책일 것이다.
어쨌든 소주가격 결정은 업체나 시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세청이 가지고 있는 구조라는 게 업계 사람들의 한결 같은 증언이다. 물론 국세청은 자신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주세법상의 주류가격명령권에 따라 행정지도를 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번 송사는 과징금의 규모가 253억원으로 처음 부과액 보다 10배 가까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주업계가 행정소송을 불사한 것은 담합에 대한 불복과 함께 가격결정의 주체가 자신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