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에다 물가폭등, 전세대란도 모자라 저축은행 부실 쓰나미가 서민가계에 밀어닥치고있다.
저축은행은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금융기관이다. 지난 한 달 새에 7개 저축은행의 영업이 정지되면서 예금을 찾아 나선 인파가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이 부실의 바이러스가 구제역처럼 저축은행 전반으로 전염되지 않을까 서민 예금자들이 마음을 조이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몇 해 전부터 위기의 경고음이 끊이지 않았었다. 설마 설마하다 부동산경기 침체 장기화로 대출상환 연체율이 치솟으면서 왕년의 '대박'이었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이 속속 '쪽박'을 안기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규모 1위인 부산저축은행 계열사들의 경우 자산 7조 원 가운데 60%를 부동산PF대출에 쏟아 부은 데다, 5개 계열 저축은행 자금을 한꺼번에 운용해 부실이 집적됐다.
금융위원회는 다른 저축은행의 PF대출비중은 20%선에 그쳐 이미 옥석가리기는 끝났다며 과도한 예금인출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예금인출사태는 좀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축은행의 예금인출사태는 2000년 10월 당시 상호신용금고(현 저축은행) 17곳이 한꺼번에 영업이 정지된 이후 1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당시는 상호신용금고사장들의 횡령과 불법대출 권력층 연루 등이 불거지면서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하고 17곳에서 예금인출사태가 나 문을 닫아야 했다.
현재 영업 가능한 저축은행은 전국에서 98개로 지난해 말(105개)에 비해 7개가 줄었다. 1994년 237곳이던 저축은행은 2003년까지 75곳이 인가 취소되고 40곳이 합병, 8곳이 영업 폐지돼 114곳으로 절반이상이 줄어드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퇴출된 주요 사유는 대주주나 경영진이 예금을 '쌈짓돈'삼아 특정 목적에 사용하면서 '동일인 여신한도 위반', '출자자 대출', '회계부정' 등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PF대출 부실과 부실경영으로 105개로 줄었다. 올해 들어 지난달 14일 삼화저축은행이 부동산 PF부실로 건전성이 악화돼 영업이 정지됐고, 지난 17일 부산·대전저축은행 영업정지 발표에 이어 이틀 뒤인 19일 토요일에 4 곳이 전격적으로 영업정지 조치됐다.
저축은행이 소액 서민대출이라는 본업에서 벗어나 거액의 부실대출을 일삼게 된 데는 금융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상호신용금고'에서 '상호저축은행'으로, 그리고 '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단 저축은행들은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아 고심하다 부동산 활황을 타고 '고(高)위험 고(高)수익'의 PF대출에 열중했다.
2006년 8월 소위 '8·8클럽' 제도 도입이 여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 고정이하 여신비율 8% 이하면 우량 저축은행으로 분류돼 개별 법인대출한도(80억원)에서 면제됐다. 소액 서민대출의 본업에서 벗어나 거액 대출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2002년 금융당국이 상호신용금고를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한 점도 부실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상호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달면서 이미지가 개선돼 PF대출 등의 영업확장이 유리해졌고, 이어 2006년 당시 재정경제부는 상호저축은행에서 '상호'자도 뺄 수 있도록 해 업계의 숙원을 들어줬다.
외환위기 이후 200개가 넘었던 상호신용금고가 절반 가까이 망하면서, 이미지도 바꿔주고 상응하는 책임도 지우는 의미에서 이름을 바꿔줬다지만 명칭 변경 입법과정에 정치권과 정부를 상대로 업계의 로비가 치열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명칭 변경과 함께 은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전성도 크게 강화된 것도 사실이다. 시중은행만큼 안정성이 높지는 않지만 재무건전성이 우량한 곳도 많아 일부 부실화된 몇몇 은행 때문에 저축은행 전체가 부실덩어리로 기피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금융당국은 예금자 불안감이 우량 저축은행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BIS자기자본비율이 5%에 못 미치는 5개 은행을 공개했다. 뱅크런사태로 영업이 정지된 보해저축은행을 제외한 도민, 우리, 새누리, 예쓰저축은행 등 나머지 4개 은행들은 유동성이 확보돼 예금인출사태만 없다면 더 이상 영업정지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강원 도민저축은행은 예금인출사태를 견디다 못해 22일 당분간 휴업을 결정했다.
'땜질 처방'을 넘어 저축은행의 기능을 소매금융 위주로 재정립하고, 부실재발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 마침 저축은행의 건전성 제고를 위한 저축은행법 시행령과 감독규정 개정안의 주요내용이 다음 달 중 확정된다.
우선 거액대출의 수단으로 악용되어온 ‘8.8클럽' 제도를 전면 개편해 BIS 비율 기준을 최소한 10% 이상으로 올리고, 고정이하 여신비율을 낮추며, 동일인 여신한도에 대한 제한도 강화해 저축은행의 설립취지에 맞게 지역밀착형 서민금융기관으로 본연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저축은행의 리스크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관리하는데 불충분하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PF대출부실이 계속 늘고 있는데다 수치 놀음만으로도 우량 기관으로 분류될 수 있는 감독의 허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여러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한 대형 저축은행의 경우 계열 저축은행의 부실이 커져도 스스로의 BIS 비율은 영향 받지않아 우량저축은행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또 대주주 증자 없이 후순위채 발행으로만 BIS 비율을 높여도 당국은 우량기관으로 분류했다. BIS 비율이 높다던 곳이 갑자기 영업정지 되는 경우가 발생한 것도 이런 부실한 BIS비율 관리 때문이다.
고금리 매력으로 저축은행의 예금자는 2005년 230만 명에서 2010년 426만 명으로 해마다 크게 늘고 있지만, 대출자는 134만 명에서 88만 명으로 되레 감소했다. 우량한 대출거래처가 줄어들면서 부실위험이 가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중은행과 같이 5000만원의 예금보장을 해주는 바람에 저축은행들이 무분별한 자산운용을 하고 예금자도 이를 믿고 위험한 줄 알면서 예금을 맡기는 구조적 문제점도 차제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모든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다. 더 이상 영업정지는 없다고 해놓고 이틀 뒤 전격적으로 추가영업정지를 내리면서 금융당국의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금감위원장의 말을 믿고 예금을 인출하지 않았던 예금자들의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네티즌이 전하는 현장 상황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제 돈은 5000만원이하이기에 신경은 쓰이지만 별반 걱정은 안합니다. 영업점에 나가 설명을 듣는데 젊은 사람은 몇 사람 없더군요. 모두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자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 생활하겠다고 조금 큰 돈을 넣어두신 그분들은 어떨까요? 아마 죽고 싶을 겁니다."
'묻지 마 인출사태'는 '저축은행이 안전하다'는 정부 말을 못 믿겠다는 예금자들의 불신이 아니고 무엇이랴.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기자,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주재 부국장, 경제담당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