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지막지한(?) '강성발언'을 쏟아내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4·11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점, 민감한 발언들을 자제하며 방어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의 태도변화는 2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월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이날 그의 발언들은 지극히 원칙적이고 교과서적인 분위기로 흘렀다.
스스로도 기자 간담회 시작 전 인사말을 통해 "내일부터 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아쉽게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은 자제하는 것이 공직자의 의무"라며 "간담회 내용이 다소 밋밋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사전 예고했다.
박 장관은 예고한 대로 최대한 절제된 대답으로 일관했다. 종전, 자신이 언급했던 각종 발언들을 해명·수습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는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공론화를 거쳐 의견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라며 "결혼하자마자 신혼부부에게 아들인지 딸인지를 물어보는 것은 성급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까지 언급하며 "예외는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던 박 장관의 모습은 사라졌다.
소득세 과표구간 상향조정에 대해서도 박 장관은 전과는 달리, 방어적 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상향조정)결정된 바 없고, 상향조정을 검토하겠다는 뜻"이라며 "과표구간 상향조정으로 세수가 줄기 때문에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지만 지금 말하기는 어렵다"고 애매한 답변만 남겼다.
특히 정부가 선거철에 쏟아지는 포퓰리즘적 복지공약에 대응하고, 국민들이 올바른 정책공약을 분석·선택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설치한 '복지 테스크포스팀(T/F)' 운영 방향 또한 당초 포부(?)와는 달리 몇 걸음 후퇴했다.
박 장관은 정치권에서 내놓은 각종 복지공약을 분석해 실제로 투입될 재원규모를 추계하되, 정당별로 계산한 정확한 복지공약 소요예산은 국민들에게 발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적으로 정치권 복지공약 소요예산을 검토하고 있지만 발표 시기, 내용, 여부 등은 공정한 선거 관리를 감안해 고민 중"이라며 "행정부 영역 내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작업하고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 장관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은 자제하는 것이 공직자의 의무"라고 언급한 부분은 매우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공직자라면 선거판에 고개를 기웃거리거나 선거바람을 타려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장관의 말을 뒤집어 보면, 최근 자신이 내뱉은 말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꼴이나 다름이 없다.
따지고 보면, 굳이 선거가 아니더라 해도 박 장관의 최근 발언들은 정치권의 주목을 받을 만한 내용들임에 틀림이 없다. 조세제도야 정부가 입안하는 것이지만, 최종 선택은 정치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 장관의 태도변화는 일견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많다.
정부 부처의 수장, 그것도 국가 경제정책의 사령탑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중해야 한다. 그 말의 파급력이 온 나라를 벌집 쑤시듯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은 자제하겠다'라는 말을 생략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강성발언'들은 박 장관 스스로의 '소신의 산물'로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빚을 질 수도 있는 법이다. 이 시점에서 박 장관의 상황을 가장 적절히 함축한 말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