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의 한 장면. 보험금 수령을 위해 보험회사에 방문한 등장인물은 지급이 안된다는 직원의 말을 들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고객님께서 서명하신 약관에 의하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2012)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보험금을 노리는 사채업자와 이를 내주지 않으려고 사기꾼들의 머리 위에서 노는 보험회사.
보험계약을 이용한 사기와 이를 막으려는 보험회사 간 갈등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보험 사기로 새는 돈은 연간 442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불필요한 지출로 오르는 보험료는 고스란히 가입자의 몫이 된다.
금융권의 분쟁 사례 중 80%도 보험회사에서 발생한다.
금융 상품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보험 가입자는 자신의 질병 등을 알릴 의무가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하는 과정이 더욱더 어렵다.
TV에서 방송되는 보험 광고들을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험금을 쉽게 내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금감원은 화물자동차 운전자의 낙상 사고와 관련해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가입자 편을 들어준 일이 있다.
운전자 A씨는 2010년 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H보험회사의 자동차보험에 가입했는데, 이 기간 중 화물차 운전석에서 떨어지며 사망했다.
병원의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A씨의 사망 원인은 '다발성 뇌출혈 및 두개골 골절 등에 의한 뇌간 압박'이었다. 그는 화물차에서 하차 도중 발을 헛디디며 땅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유족들은 보험회사를 상대로 '자기 신체 사고 사망 보험금' 1억원(약관 금액 기준)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H사의 입장은 달랐다. A씨가 평소 심장병과 대뇌동맥 폐색 및 협착 등의 질병을 앓고 있었던 만큼 사망과 자동차 사고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H사는 A씨의 과실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는 약관상 '피보험 자동차의 사고로 인해 죽거나 다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H사가 유족들에게 보험금 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사건의 쟁점은 A씨가 피보험 자동차의 사고로 사망했는지의 여부"라고 설명했다.
A씨는 추락 당일 병원에서 개두술(머리를 절개해 뇌를 노출시키는 시술)을 받은 이틀 후에 사망했다.
병원이 발행한 진료 소견에 따르면 A씨의 상태는 뇌졸중 발병의 확률이 높지만 장기간 안정적이었으며, 외상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컸다.
또 화물차는 25톤으로 차체(車體)가 일반 자동차와 비교해 높게 제작됐다. 따라서 하차 시 낙상할 위험이 있고, 발을 헛디디는 과실 등도 운송 수단으로서의 위험성에 기인한다.
유족들이 제출한 목격자의 진술서 역시 분쟁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사고 당시 A씨를 발견한 목격자는 "차량 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A씨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고, 코피가 흘렀다. 그가 오른쪽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119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