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 기업들이 흔들린다

2년 연속 2% 저성장?…엔저 등 환율리스크도 증폭
상장기업 절반 '경제민주화, 경영권 불안 야기'
주요국 기업지원 강화…새 정부 기업정책 '눈길'

글로벌 경기침체의 광풍이 2%대 저성장 시대를 도래시키더니 연초부터 원화절상·엔화 약세로 불리는 '엔화의 역습'이 국내 기업들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적극 나서 '엔화 리스크'에 대한 지나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지만 일본 아베 신정부의 '엔저 선언' 이후 국채매입 등 무제한 금융(양적) 완화 움직임은 기업들의 불안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지난해 선거기간 내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이후 점차 대기업 규제로 변색된 '경제민주화'가 더욱 버겁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3년 기업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저성장의 굴레는 어느 정도일까? 

■3% 성장도 어렵다…저성장 내몰린 기업들 =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2%대 저성장이 확실시 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일 '2013 경제전망'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당초 예상치 보다 0.4%p 낮춘 2.8%로 전망했으며, 설비투자는 전년동기 대비 1.5%p 줄어든 2.7%로 예상했다.

한국경제가 경제성장률 3% 이하로 떨어진 것은 2차 오일쇼크(1980년 1~4분기), 외환위기(98년 1~4분기), 카드사태(2003년 2분기),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4분기~2009년 3분기) 등 극히 이례적이다. 

EU와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경기회복이 늦어지며 수출이 탄력이 받지 못하는데다가 꽁꽁 얼어붙은 내수까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있었던 박근혜 당선인과의 간담회에서 "불행히 세계경제 여건이 좋지 않고 국민체감의 우리경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경쟁국이 맹렬히 추격해 오고 사회적 활력이 떨어지며 국민적 자신감도 전만 못하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한 바 있다.  

사실상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을 주도했던 자동차와 전자부문이 최근 원화 절상 문제로 일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뼈 아프다.

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국 자동차 수출액은 12% 줄어든다. 또 삼성전자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시 영업이익이 약 167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위기의 기업, 경제민주화가 뭐길래 = 기업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은 대외환경 뿐이 아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며 정치권의 화두로 부상한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숨기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변질됐다는 불만이 팽배한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2월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경제민주화가 경영권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경제민주화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출자규제에 대해 응답기업의 56.3%가 '경영권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지배주주의 의결권 축소 등이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논의되는데 대해서도 적대적 M&A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을 통해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토록 하겠다고 공언한데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관련 전경련은 "순환출자는 기업구조조정과 기업 인수과정 등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기업경영을 위축시키고 자본시장의 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높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기업의 투자 위축은 박 당선인이 핵심 과제로 내건 '일자리 창출'과 '복지 강화'에도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 대기업의 투자마저 위축될 경우 일자리 마련은 물론 막대한 복지재원 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편가르기도 올바른 균형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며 중소기업 육성의지를 강조한 박근혜 당선인의 국정철학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의 정책적 지원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하지만 한국의 기업구조상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수급관계가 많아 대기업규제 강화로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면 결국 중소기업에게도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여야가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 공약을 쏟아냈는데 현재 시점에서 그 같은 제도나 규제가 타당했는지 검증이 필요하다"며 "다소 선동적인 경제민주화 논의는 다수의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으로 오류를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 기업정책, 첫단추 중요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의욕적으로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한 이후 새 정부에 대한 기대는 한껏 고조돼 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기업정책에 대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질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하다는 측면에서 기대감 속에서도 우려 역시 상당하다. 

지난 2008년 대불공단 대형 선박블럭 운송에 막대한 지장을 주던 교량 인근 '전봇대' 철거는 이명박 정부의 규제개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통해 대대적인 민관합동 규제개혁에 나섰던 이명박 정부에서 오히려 기업 규제가 2009년 1만1050개에서 2012년 1만3594개로 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실제 한국은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정부규제 부담 순위에서 2009년 98위에서 2011년 117위로 추락했으며, 2012년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기업관련 법규 순위에서도 조사대상 59개국 중 42위를 기록하는 등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글로벌 경기불황의 파고를 넘기 위해 파격적인 기업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엔저정책을 통한 수출기업의 경쟁력 강화정책, 중국은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축소, 미국은 일자리 창출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인프라 및 세제감면 지원 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

또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주요국은 높아진 재정위험에도 불구하고 경제활성활를 위해 법인세 감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법인세를 30%에서 25.5%로 대폭 낮췄으며, 미국은 35%에서 25~28%의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26%에서 24%로 낮춘데 이어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23%와 22%의 법인세 인하를 계획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인 '기업 살리기 추세'에 자극 받은 국내 기업들이 새 정부의 기업정책 방향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우려를 숨기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바람직하지만,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신중히 설계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등 대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대기업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것이 중소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기업법률포럼 대표)는 "경제민주화는 이해 관계자의 구미에 따라 달리 각색할 수 있는 점이 문제"라며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를 가지고 이른바 '약자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균형성장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 전에 이 같은 경제민주화의 오류를 수정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대기업을 경쟁에서 아웃시키고 중소기업에게만 경쟁 기회를 주겠다는 것은 동반성장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