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지난 17일 전격 타결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상징으로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공식 출범할 수 있게 됐다. 개정안 제출 47일 만에, 새 정부 출범 21일만의 '지각' 타결이다.
합의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원안의 뼈대를 유지하되, 그동안 여야 간 첨예한 이견을 보여 온 방송 중립성·공정성을 확보하는 '안전판'을 마련키로 한 것이 그 골자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당초 구상한 새로운 틀에 따라 국정운영의 추동력을 일단 확보하게 됐고, 야당으로서도 제기된 우려를 견제·차단할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정부조직개편과 직접 관계가 없는 몇몇 정치적 사안들도 쟁점현안 일괄타결 형식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 정도 결과를 내놓으려고 21일씩이나 '식물정부'를 만들고 싸웠냐는 질타도 쏟아진다. 박대통령은 원하는 것을 거의 100% 얻었고, 야당은 '플러스알파'의 견제장치를 얻어낸 데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국정에 협조하면서도 방송 공정성 등 민주적 가치는 지켜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여야가 국정파행과 비판여론까지 감수해 가며 기(氣)싸움을 벌여온 최대쟁점은 방송기능의 이관 문제였다. 종합유선방송(SO)과 위성방송, 인터넷멀티미디어TV(IPTV) 등 뉴미디어 방송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일괄 이관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입장과 SO 기능 등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잔류시켜야 한다는 민주통합당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박 대통령은 "SO를 포함한 유료방송 인허가 정책이나 주파수 정책 등 핵심이 빠지면 미래부는 헛 껍데기만 남는다" 며 "타협·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못을 박았었다.
여야는 결국 SO 인·허가권과 법령 제·개정권을 모두 독임제 행정부처인 미래부가 갖도록 하되, 미래부가 이를 시행하기에 앞서 협의제 부처인 방통위의 사전동의를 받도록 했다. 여야 추천으로 위원이 구성되는 방통위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래부는 SO 등 뉴미디어에 대한 허가권을 행사할 수 없게 절충한 것이다.
SO(System Operator)는 지역케이블방송이다. 전체 TV시청자의 90% 가까이가 지역 케이블 방송에 돈을 내고 TV를 보고 있다. 지상파방송의 재송신 채널과 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의 채널편성권을 갖고 있고, 뉴스나 프로그램도 자체 제작 방송해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 후보자 토론회, 대담, 연설방송 등을 통해 지역여론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야당 측은 이 SO의 관할권을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에 남겨놓아야 야당 몫 위원들이 어느 정도 견제가 가능하다고 고집했다.
미래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의 융합을 시작으로 모든 산업간 융합을 통해 일자리·신산업 창출을 주요사명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합의내용은 방송에 관한 한 방송통신의 산업적 융합보다는 방송의 공공성·공정성·공익성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방통위가 동의하지 않으면 SO 및 위성TV의 허가·재허가를 할 수 없게 하는 '잠금장치'가 마련됐고, 당초 미래부로 이관하려던 방송광고, 방송채널정책 등이 모두 방통위에 남겨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방송사업자가 내외부의 부당한 간섭으로 불공정하게 채널구성을 금지하는 내용과 지역채널에서 특정사안에 대한 해설·논평, 지역보도 외의 보도 금지 조항을 방송법에 신설해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동시에 처리키로 합의도 했다.
SO·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공정한 시정점유를 위한 장치마련,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송의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 등의 방안은 국회에서 여야 동수로 구성되는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에서 다루기로 했다.
그러나 여당의 'SO 지키기'를 위한 '주고받고' 식 업무배정 과정에서 주파수, 인터넷산업, 소프트웨어, 개인정보보호 업무가 원칙 없이 여러 부처로 흩어졌다. 특히 주파수 정책의 분산은 방송정책은 물론 통신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방송통신 융합정책의 신속한 추진에도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은 산업적 융합 못지않은 소중한 사회적 가치이고, 산업적 측면에서 비용을 치르다보니 조직개편안이 당초 인수위 구상에서 후퇴했다는 평가는 불가피하다.
방송통신의 융합은 기술발전과 시장진전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이지만 그 융합이 신성장동력과 국가경쟁력으로 현실화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태생적으로 융합시대에 역행하는 라이선스를 가진 방송 통신 미디어기업들이 영역싸움에 돈과 시간을 낭비해서는 미래를 창조할 수가 없다. 과감하게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및 인재육성에 투자해 글로벌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창조경제는 이전 것과의 결별이 결코 아니며, 다른 정부와 구분 짓는 정치적 구호여서도 안 된다. 정보, 바이오, 나노, 환경기술 등 첨단기술을 기존 산업에 접목·융합시켜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창출해나가는 긴 과정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연구·개발(R&D)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식산업 중심으로 경제시스템을 재편하겠다'며 지식경제부를 만들고 3대 분야 17개 신성장동력 육성계획을 내놨었다. 노무현 정부는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을 내걸고 과학기술부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켰었다.
박근혜 정부만의 고유브랜드로 고집하기보다는 지난 10여 년 동안 축적되어온 투자성과들을 토대로 가장 가능성 높은 분야를 집중육성 하는 것이 창조경제 성공의 첩경이다.
연구·개발을 통해 생성된 새로운 기술들이 창업과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선순환적 연구생태계를 조성하고, 창업 기술기업들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커갈 수 있는 인수·합병(M&A) 시장과 이를 용인하는 제도적 장치와 문화적 토양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민간의 창발성이 생명이며, 규제와 지도위주의 행정만능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미래창조과학부 한 부처의 전유물이 아니고 기획재정부 산업자원통상부 교육부 등 유관부처들이 유기적 협력체제를 갖추어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
합의 도달에 47일이나 걸린 것은 소관부처에 따른 각 방송통신사업자들의 이해다툼과 국회 소관 상임위 중심 의원들 간 '밥그릇싸움'이 해법을 꼬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력은 실종되고 야당은 '국정발목잡기'로, 청와대와 여당은 '불통대통령' 및 '허수아비 여당'으로 둘 다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의 '비용'치고는 너무도 큰 국력소모와 시간낭비다. 이 비용을 최소화시키는 일이 진정한 정치쇄신이고 정치선진화임을 정치권은 깨달아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