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놈의 회사가 매일 먹고 마시는 데에 이토록 많은 돈을 써?”
재벌 그룹의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보험회사 CFO로 부임한 고위 임원이 경비집행내역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부하직원들이 진땀을 흘려가며 설득에 나섰다.
“전무님, 보험업은 사람과 종이로만 이루어진 인지산업(人紙産業)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곧 공장이자 생산시설입니다. 그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낭비가 아니라 시설투자나 유지보수와 같은 비용입니다”
한바탕 소동이 있은 뒤로 다행히 그 CFO는 더 이상 식음료관련 경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보험회사는 제조업과는 상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앞에서 언급한대로 사람과 종이로만 이루어져 있다.
다른 산업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등 제조시설, 그를 최종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필요한 유통 및 보관 시설 등이 있어야 하나 보험업은 그런 것이 필요 없다.
단지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그 것을 판매하며 납입된 보험료로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사람만 있으면 된다. 따라서 보험회사의 경쟁력은 그 회사가 가지고 있는 인적자원의 양과 질이 전부다.
또한 모든 업무가 종이에 의해 수행된다. 가입설계서, 청약서, 증권, 약관, 보험금 신청서 등 보험계약에서부터 보험금 지급까지 모든 업무가 종이에 의해 이루어진다.
둘째, 판매하는 상품이 미래에 발생할 지도 모르는 사고를 보장해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품이 제공하는 급부를 수혜하지 못한다.
상품의 실체를 볼 수가 없고 단지 보험회사의 약속 즉 “피보험자가 죽거나 다치면 약관에서 정한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말만 믿고 구매하는 상품이다.
재해사망보장보험의 경우 가입자 100만명당 45세기준 남자는 327명 여자는 97명만이 매년 재해로 사망하기 때문에 나머지 9만9673명 및 9만9903명은 관련보험금 수혜를 받을 수 없다.
셋째, 재고가 없다.
보험은 고객이 회사에게 보험에 가입하겠다고 청약을 하면 회사가 심사하여 승낙함으로써 계약이 성립된다. 따라서 재고가 쌓일 이유가 없다.
넷째, 통상 정규직원 숫자보다 위촉관계인 사업자 신분의 설계사 숫자가 훨씬 많다.
설계사는 자기가 모집하는 신계약 규모에 따라 수당을 받는 사업소득자이다. 따라서 세금도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납부한다. 삼성생명의 경우 설계사가 약 4만명에 이르고 있다.
다섯째, 보험영업부문과 자산운용부문으로 나누어져 이질적인 조직문화가 존재한다.
보험영업부문 근무자들은 적극적이고 부서원들 간에 끈끈한 정으로 뭉쳐져 있다. 반면 자산운용부문 구성원들은 보수적이며 분석적이다.
마지막으로 보험사의 사업구조는 거의 모든 게 장기전을 펼치는 구조로 되어있다.
보험계약은 통상 종신 등 몇 십년에 걸친 장기간의 계약이고 보험료는 한 번 정해지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영업조직도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번 구축되면 매우 안정적으로 업적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보험업은 호흡이 길고 보수적이며 안정을 추구한다. 동료끼리는 끈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경조사 등에는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한다. 하루 이틀 보고 헤어질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수기 렌탈사업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둔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이 건설업에 대한 이해없이 극동건설을 인수하여 그룹이 공중분해되는 큰 손실을 입었다. 건설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입은 재앙이었다. 어떠한 산업이나 그 산업만의 특성이 있다는 것을 등한시한 결과는 이만큼 참혹하다.
주식투자나 이직 등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경우에는 철저한 연구와 분석이 있어야 한다. 필자 경험으로 보면 보험업도 예외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