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지배 구조 대수술, '개혁 바람' 분다

금융지주회사 외부 통제·시장 감시 강화 추진
거수기 사외 이사·낙하산 인사 등 반대 목소리 높아

금융 당국의 한 고위 관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좋은 제도라고 해서 들여왔는데 꼭 이를 악용하려는 세력들이 생겨나고 결국 부작용을 낳았다."

과거 금융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도입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지주회사 및 사외(社外) 이사 제도의 도입 등이다. 대형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경제력 집중으로 시장의 지배력을 양극화시키고, 금융지주회사가 몸집을 불리려는 탐욕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사회 곳곳에서 일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책의 실패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권이 주도하고 관여하는 '관치금융'의 폐단은 한국 금융의 발전을 발목 잡는 장애로 지적된다.

■ 금융지주회사, 무엇이 문제인가 = '지주회사'(holding company)란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소유해 경영을 지배하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는 은행, 금융·투자(증권), 보험 등의 전통적 업무를 대형화해 자회사 간 전략적 제휴와 인수 합병(M&A), 해외 개방을 허용하는데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도입됐다.

2001년 공적 자금이 투입된 14개 금융회사가 통합돼 우리금융이 출범했고 이후 KB금융그룹, 신한금융지주회사, 하나금융그룹, KDB금융그룹과 지방은행을 포함하는 BS금융지주, DGB금융지주 등이 생겨났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메가 뱅크(Mega Bank)를 설립해 한국의 금융지주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낼 것을 공약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금융회사들은 내우외환을 겪으며 또 다른 위기의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이 파생 상품 투자 손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과연 금융회사의 대형화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도 이 같은 시대의 흐름을 파악, 금융지주회사 지배 구조를 재검토하는 등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중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금융회사 지배 구조 TF'를 출범, 금융 개편 정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회사가 경영진의 권한 강화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내부 권력 갈등이 심화되는 부정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외부 통제를 보다 강화해 시장의 감시에 따른 관행 개선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사외 이사 제도 대수술, 외부 감시 강화된다 = 1998년 도입된 사외 이사 제도도 대표적인 실폐 사례로 꼽힌다. 경영진의 독단을 통제하기는커녕 최고경영자(CEO)의 권한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거수기 역할로 전락하거나 스스로 권력화(化)하는 문제점을 낳았다.

실제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코스피 금융회사의 이사회 안건은 53개 중 47개가 100% 원안대로 의결됐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 이사 비중도 3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와 기업의 경영진들이 사외 이사 제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악용하고 있다.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기업에는 친(親)정부 인사 등 낙하산 인사를 하고 민간 기업에는 지배주주와 친분이 있는 사외 이사를 선임하면서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탓이다"고 지적했다.

또 "후보들이 직접 사외 이사의 적격성을 서술식으로 공시하거나 학연, 지연 등을 기재해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있는지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지난 22일 열린 토론회에 참석, "제가 3개월 동안 사외 이사를 하다가 잘렸는데 안건을 지적했더니 저를 추천한 분에게 연락이 왔더라.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인정상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사외 이사가 경영진과 대주주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추천 제도를 투명하게 하는 것"이라며 "사외 이사 후보군을 전국은행연합회나 금융투자협회에서 관리하고 금융회사가 요청할 때 목록을 제공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석 서강대학교 교수는 "이사회는 9~15명의 작은 규모로 운영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외 이사는 과반수로 유지하고, 이사회 의장과 CEO는 분리돼야 하며,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사들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이사회 차원의 리스크(risk) 지배 구조에 따른 문제점이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데, 전문성 결여뿐 아니라 정보 전달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오라클(Oracle) 판결은 독립성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오라클의 소액주주들은 이사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소송 위원회의 구성원 2명이 회장과 관계있는 스탠퍼드대학교 교수인 점을 감안, 소송에 참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오라클 회장은 스탠퍼드대학교에 기부금을 납부하고 있었다.

국내 상법에도 이러한 규정이 있지만, 이해관계에 대한 해석이 포괄적이지 않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자만이 의사 결정의 제한을 받는다.

■ "금융권 낙하산 인사, 더 이상은 안된다" =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 4대 천왕'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KB, 하나, 우리, 산업은행 등 주요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이 모두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며 낙하산 논쟁을 일으켰다.

새 정부에서 이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강만수 전(前) KDB금융그룹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사퇴를 표명했다. 이어 새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지낸 홍기택 신임 KDB금융그룹 회장이 내정되자 이러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전문성 있는 인사를 (청와대에)추천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지만, 이를 두고 '똑같은 관치금융의 되풀이'라는 논란의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최근 그가 우리금융 차기 회장을 두고 "민영화 철학이 맞는 분이었으면 좋겠다. 인사에 개입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사회적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시장에서 다 낙하산이라고 하는데 본인들만 낙하산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고 비판한 바 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당국이 사기업에 개입하는 것은 금융기관과 시스템에 대한 해외의 신뢰도 추락을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금융기관의 경영상 문제는 시장과 주주의 판단에 맡겨야 하며, 금융 당국은 감독을 이유로 경영에 개입하는 타성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