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의 인력은 능력보다 네트워크를 우선한다. 수익은 대부분 국내시장에서 창출되고 해외 진출에 있어 실질적 역량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13년.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고 세계화를 이루자는 시작과 다르게, 금융지주회사는 온갖 부작용을 속출하며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다.
새 정부는 금융회사 지배 구조를 개편, 내부 권력 갈등 등을 야기하는 낡은 제도들을 손보겠다는 계획이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실장(선임연구위원·사진)은 금융지주회사 지배 구조가 바람직하게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경영진 및 이사회 간 견제의 균형, 감독 기관의 역량 강화, 해외 진출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는 "사외 이사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고 경영진의 보수 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현행 금융지주회사 지배 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금융지주회사는 '원 스톱 쇼핑'(one-stop shopping)을 원하는 금융 소비자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선진 금융회사의 지배 구조는 여론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금융지주회사 체제가 급속하게 도입되면서 불필요한 비효율도 발생했다.
은행지주회사의 대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경영진과 이사회는 '주인 행세'를 하려는 경향이 있고, 재벌계 비(非)은행 금융회사의 경우 재벌 일가의 황제적 전횡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
금융지주회사도 국내시장 중심의 영업, 포트폴리오 불균형, 지배 구조의 난맥 등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은행지주회사의 은행업 비중은 83.5%,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의 증권업 비중은 90.8%(2011년 자산 기준)에 달하는 등 주력 업종의 편중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또 경영의 연속성, 경영진과 이사회의 견제와 균형이 담보되지 않는데다 그룹의 정책 수립 등 회사의 운영 체계가 핵심 자회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감독 당국의 역량 부족도 문제이다. 현행 금융지주회사 지시로 이뤄진 위규 행위에 대해 지주 경영진은 처벌되지 않는다. 감독 당국이 지주를 감독하고, 지주가 자회사를 감독하는 중층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중 대표소송 제도 등을 도입, 자회사 경영진이 지주 경영진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 사외 이사 제도가 바람직하게 발전하려면.
사외 이사 제도의 파행은 제도적 문제라기보다 운영상의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경영진 중심의 이사회 제도는 사외 이사의 통할(govern) 기능을 약화시킨다. 반대로 사외 이사 중심의 이사회 제도는 사외 이사가 경영(manage)하려는 유인을 높임으로써 어느 쪽도 완전한 메커니즘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사외 이사 중심의 이사회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정보의 제공이 충분치 못하고 전문성과 헌신(commitment) 정도가 낮은데 기인한다.
따라서 사외 이사 제도가 정착되려면 금융회사가 경영계획을 수립하거나 인수 합병(M&A)을 추진하는 초기 단계에서 이사회에 보고할 의무를 규정에 명시화해야 한다.
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이사회 의사록을 공시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발언 내용을 실명으로 공시하지 않더라도 의사록 전체를 공시함으로써 '일하는 이사회'(working board)인지 '거수기 역할만 하는 이사회'(rubber stamp board)인지 판단이 가능하다.
그리고 외부의 HR(human resources) 회사에 의뢰해 사외 이사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소액주주에게 사외 이사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 경영진의 보수를 개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개별 직원의 보수 체계(compensation scheme)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경영진의 보수 공개가 기업의 투명성과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가능하다.
등기 임원뿐 아니라 미국처럼 주요 포지션(CXO)의 보수를 모두 공개할 필요가 있으며, 추후 지급되는 성과급과 스톡옵션까지 공시해야 실효성이 제고될 것이다.
또 상장된 금융지주회사 외에 자회사의 경우 소액주주가 없다는 이유로 경영진 연봉 공개에서 제외될 수 있으나, 둘 다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우리 금융회사들이 세계화하기 위한 방안은.
금융회사 수익의 대부분은 국내시장에서 창출된다. 현지인 대상의 영업 등 본격적인 해외 진출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원화의 국제화와 언어 소통능력이 미흡한 태생적 한계 때문.
해외 발주 대규모 프로젝트 사업을 수주할 때 조달 금리가 높은 것도 걸림돌이지만 환리스크(exchange risk) 헤지 비용이 커 대출 및 투자에 어려움이 있다.
해외 진출이 강조될 때마다 틈새시장이니, 선택과 집중이니 립서비스만 외쳤지, 이러한 역량의 갭을 메우는 데 소홀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은행 점포 수를 보면 KB국민은행은 30개 신설 9개 폐쇄, 우리은행은 57개 신설 6개 폐쇄, 하나은행은 4개 신설 6개 폐쇄를 했다. 반면 해외 점포 중 폐쇄된 곳은 지난 4년 동안 하나도 없다.
이는 해외 점포가 독립적 기준에 의해 운영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영국계 은행 HSBC는 지역별 및 사업별로 자본 투자율을 분석, 역량 집중 지역을 선정하거나 수익 기여가 낮은 지역의 퇴출 전략에 활용한다.
따라서 금융의 국제화가 성공하려면 형식주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고 실질적인 수익 창출이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금융회사의 성격이나 진출 지역에 따라 과감한 M&A를 추진하고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outbound) M&A는 일본의 20분의1, 중국의 10분의1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