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7년간 점진적 개방으로 외국로펌에 철저 대비…국민정서도 한 몫
2017년 법률시장의 전면 개방을 앞두고 독일과 프랑스의 법률시장 개방 사례는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의 후유증이 가장 심각한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지난 1998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후 영·미계 로펌에게 침몰당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독일은 당시 500개의 토종로펌과 5만명의 변호사가 있을만큼 탄탄한 법률시장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1999년 독일의 3위 로펌이었던 퓐더가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 챈스에 합병된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2위 로펌인 브룩하우스가 영국계 로펌과 합병했다. 현재 독일 10대 로펌 중 순수 토종로펌은 2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독일 법조계에 충격을 준 또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1998년 다임러벤츠사가 미국 크라이슬러사와 합병할 당시 합병과정에 독일 로펌들을 완전히 배제시켰다. 이같은 사례는 해가 갈수록 두드러져 독일의 세계적 전자회사인 지멘스 등 독일계 대기업들도 외국로펌을 선호하는 상황이 됐다.
프랑스도 독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랑스는 1970년대부터 법률시장을 개방해 영·미계 로펌에 시장을 거의 잠식당했다.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상위 25개 로펌 가운데 프랑스 회사는 4개 뿐이다. 미국계 회사가 13개, 영국계 회사가 5개로 되어 있다. 프랑스에 있는 로펌 가운데 3분의 2는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과 프랑스와는 달리 일본은 점진적 개방으로 외국 로펌 진출의 충격을 이겨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7년 처음 법률서비스 시장을 개방한 일본은 2004년 4월부터 자국 변호사와 외국 변호사의 동업을 전면 허용, 완전한 시장개방을 해냈다.
이기간 동안 일본은 법률시장 보호를 위해 철저한 노력을 기울였다. 기업과 국민정서도 외국 로펌에 호의적이지 않아 일본 토종로펌들이 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길러내는 시간을 벌었다.
일본에 처음 진출했던 슬라우터 앤 메이, 브라운 앤 플랫, 던 앤 클리처 등 세계적 로펌들은 일본 정착에 실패하고 모두 철수했다.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현재 일본 상위 10개 로펌 중 외국계 로펌과 합병해 운영하는 곳은 3곳뿐이다. 일본 변호사는 총 2만8000여명인데 외국 변호사는 3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호하는 모습 출처 : 조세일보 DB
■ 국내 법률시장 지각변동 불가피…“국내 10대 로펌중 외국계 절반 달할 것”
법조계는 약 2조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대규모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법률시장 규모를 가진 독일의 경우 완전 개방후 토종 로펌이 영·미 로펌의 일개 팀으로 합병된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국내 로펌 상당수는 시장개방 후 영·미 로펌에 흡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대형 로펌의 관계자는 "영국 로펌의 경우 세계 어느곳에 진출해도 토종 로펌 흡수를 통한 현지화 전략을 사용했다"며 "미국 로펌도 영국 로펌과 규모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내실 있는 한국 토종 로펌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디엘에이 파이퍼의 이원조 대표는 "회계법인시장이 대부분 외국계에 잠식된 것처럼 법률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국내 10대 로펌 순위 중 5개는 외국계 로펌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로펌들은 해외로펌에 비해 자신들이 취약한 분야로는 기업금융·M&A(인수합병)·에너지 자원개발 등의 분야를 꼽고 있다.
이들 분야는 거래액이 조(兆 ) 단위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고, 국내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수요가 몰리고 있다.
대한변협의 관계자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해외자문 시장을 잠식 당하게 되면 국내 법률시장에는 연쇄적 충격이 올 수 있다”면서 “국내 대형 로펌들이 국제 자문에서 눈을 돌려 송무 등 국내 부문에 치중하게 되면 중소 로펌이나 개인변호사들까지 도미노처럼 충격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형마트가 동네에 들어오면 골목 상권이 흔들리는 것처럼 대형로펌이 중소 로펌이 맡던 업무까지 손을 대면 결국은 개인변호사가 사무실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내 법률시장의 문턱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오는 2017년부터 법률 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국내 로펌과 개인변호사 사무실까지 일대 회오리 바람이 불어닥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