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총 135조원에 달하는 국정과제 이행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강력한 비과세·감면 정비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일단 올해에만 약 2조원의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고, 오는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비효율적인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해 총 15조원의 세수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히고 설킨 비과세·감면 제도를 무 자르듯 단칼에 축소하기는 쉽지 않은 일. 당장 세제혜택이 줄어들 경우 그동안 내지 않았던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생돈'을 지불해야 하는 납세자들의 조세저항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권에서 출범 초기 세수확보를 위해 비과세·감면 정비를 추진했지만 그 결과는 초라했다. 오히려 더 많은 세제혜택만 신설해 재정건전성을 위협해왔다.
특히 세법개정이 필요한 비과세·감면 정비 작업의 특성상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벽을 넘는데 실패를 거듭했다.
장기화되는 경기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고자 출범 초기부터 민생안정 및 경기회복을 위한 대책을 쏟아 내고 있는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도, 경제활성화를 위한 가장 강력하고 손쉬운 정책인 세제지원을 늘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인심 넘치는 국회의원들, "세금 좀 깎아주지 않겠나" = 지난 4월 열린 임시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상정한 총 80건의 세법개정안이 검토됐다.
현행 조세제도를 개선하고 탈세를 방지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법안들도 다수 상정됐지만, 세법개정안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세금을 더 깎아야 한다는 비과세·감면 추진 법안이다.
임시국회에서 검토된 80건의 국회의원 발의 세법안 중 각종 비과세·감면 방안을 포함한 법안은 47건으로 절반이 훌쩍 넘는다.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세금 감면 법안들을 대거 발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당 의원들의 경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제도 폐지, 법인의 주택·비사업용 토지 양도시 추가과세 폐지, 장기펀드 소득공제 도입, 새만금사업지역 육성을 위한 조세특례 신설 등 세부담을 완화해주는 제도를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 의원들도 건설근로자 연장·야간수당 비과세, 경로우대자 소득공제 상향, 오피스텔 월세액 소득공제 허용, 등유 개별소비세 면제, 농지매매 양도세 감면, 군복무자 저축 비과세 신설, 택시용 연료 세금감면 확대, 신용카드 등으로 지출한 부모생활비 소득공제 확대 등의 방안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발의했다.
반면 과세를 강화하자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은 6건에도 못 미친다. 그마저도 고가의 업무용 자동차에 대한 감가상각비 등 손금산입 제한, 상품권 권면금액에 따른 인지세 부과, 외투기업 세액감면의 감면한도 계산시 고용요건 강화 등에 머무는 실정이다.
□ "세제혜택은 영원히"…비과세·감면 정비 '실패의 역사' = 특히 그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비과세·감면 축소 작업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만 해도 정부는 일몰이 종료될 예정이었던 농·수·신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등 조합법인 예탁금과 출자금에 적용되던 비과세 혜택을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회의 반대에 밀려 무산됐다.
당초 정부는 농협, 수협 등 조합에 예치된 1인당 3000만원 이하 예탁금에 대한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을 폐지하고 2013년에는 5%, 2014년 이후 9%의 세율을 적용해 저율 분리과세를 시행할 방침이었다.
농·수협 예탁금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의 경우 지난 1976년 이후 30년 이상 계속돼온 제도인 만큼 세제지원을 종료해도 무방하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농민 등 조합원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의 취지와 달리, 일반 도시근로자 등에게 비과세 혜택이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비과세 예탁금 규모가 62조4165억원으로 가장 큰 농협의 경우, 농민 등 조합원이 아닌 일반 도시근로자 등 준조합원들이 맡긴 예탁금만 50조4913억원(80%)에 달했다.
하지만 일부 고소득층에게 비과세 혜택이 집중되고 있다는 정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세법개정안 심의를 통해 조합 예탁금·출자금 비과세 혜택을 오는 2015년 연말까지 3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비과세 혜택을 폐지할 경우 농어민들의 세부담 증가 등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유다.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자마자 농·수·신협, 새마을금고, 산림조합 등 5개 조합에서 "영세 농어민과 서민을 울리는 정책"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서자, 농어민들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에서 비과세 혜택을 연장해준 것이다.
조합 예탁금 비과세 제도가 연장돼 올해에만 총 4700억원 가량의 세수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출자금 비과세 제도를 폐지하지 못해 줄어든 410억원의 세수까지 감안하면, 가뜩이나 세입확보가 녹록치 않은 올해에 확보할 수 있었던 5000억원 이상의 세금이 증발한 셈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조세전문가들도 정부의 비과세·감면 축소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국회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비과세·감면 정비로 15조원을 마련한다는 방안은 가능성이 절대 높지 않다"며 "문제는 국회가 될 것이며, 국회에서 과연 비과세·감면 정비를 정부 요구안대로 해줄지, 여·야간 무난히 합의처리가 될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결국 국회의 뒷받침이 중요하므로 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등과 일찍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하나마나' 비과세·감면 축소…"이번에는 잘될까?" = 기획재정부 세제실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감면해주는 국세만 총 29조8000억원에 달한다. 국세감면 항목 수도 총 174개나 된다.
정부는 비효율적인 세제혜택을 대폭 정비하기 위해 올해부터 일몰이 도래한 비과세·감면 제도를 원칙적으로 종료할 방침이다.
하지만 당장 올해 연말로 혜택이 종료되는 비과세·감면 제도는 44건으로, 감면세액 규모가 1조7000억원에 불과하다. 올해 연말까지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더 연장하지 않고 종료하더라도 목표치인 2조원 가량의 세수를 확보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비과세·감면 제도 중 올해에만 장기주마련저축 비과세 등 24개를 폐지하고, R&D 비용 세액공제 조정 등 9개 제도를 개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반면 장기펀드 소득공제 신설, 한부모 소득공제 신설, 비과세 재형저축 신설, 비거주자 외화예금 세제지원, 특성화고 등 졸업자 군 전역후 복직 중소기업 세액공제 신설 등 5개의 감면제도가 새롭게 마련돼 약 274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전망이다.
정부가 이미 발표한 140大 국정과제 안에도 다수의 세제지원 신설·확대 방안이 포함돼 있다. 기존 비과세·감면을 축소해 세수를 늘리더라도 나갈 돈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국정과제 속의 조세분야 과제를 살펴보면 가업상속지원 강화, R&D 조세지원 확대, 근로장려세제 적용대상 확대 등 기존 세제지원을 강화하거나 늘리는 방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사회서비스산업 세제지원, 렌트푸어 지원, 자녀장려세제, 문화예술 조세지원, M&A 세제지원, 재기중소기업인 재창업 세제지원, 임대사업자 세제지원 등도 담겨있다.
장기화되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연달아 발표하고 있는 경제활성화 대책들에도 이미 각종 세제지원 방안이 대거 포함됐다.
지난 4·1 부동산 종합대책은 주택거래 정상화를 위한 양도세·취득세 감면이 핵심이고, 지난 15일 발표된 벤처·창업 활성화 대책도 엔젤투자소득공제 확대와 벤처기업 M&A 법인세·증여세 감면 등 세제혜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2조원, 2017년까지 총 15조원 수준의 비과세·감면을 축소한다는 계획이 실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조세지출 정보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등 상시적인 비과세·감면 정비작업을 실시하겠다는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정부는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감면은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일몰이 도래하지 않는 제도들도 상시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라며 "비과세·감면 정비로 5년간 15조원을 마련한다는 목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밝혔다.
기획취재팀 : 김진영 정책팀장, 장은석·이희정·이현재·강상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