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퇴직연금 순항 중…한국은 포화 상태

퇴직연금이 일찍이 발달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어떠한 방법이 이용됐을까.

미국과 일본의 경우 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앞서 맞이했고, 인구 고령화를 일찍이 경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선진국들도 퇴직연금을 활성화하기 위해 의무 가입 및 조세제도 등을 이용했다.

퇴직연금 도입 8년이 지난 한국도 의무 도입이나 조세제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다.

■ 미국 DC가 DB 웃돌아, 수익률 초점 맞춘 포트폴리오 운영 = 미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확정기여(DC)형에 해당하는 '401(K)' 퇴직연금의 보급이 확대됐으며, 적립금과 가입자 수 둘 다 확정급여(DB)형을 웃돌고 있다.

피델리티, 뱅가드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인출 전용 투자신탁'을 운영하며, 일본의 경우 DC형 퇴직연금 가입이 활발하다.

문승석 KDB산업은행 부행장(연금신탁본부)은 "2000년대 초 퇴직연금을 도입한 일본의 경우 DC형 퇴직연금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따라서 일본의 사례를 많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2008년부터 퇴직연금 의무 가입 제도를 시행, 연봉 5035파운드(약 868만원) 이상의 22~65세(여성은 22~60세) 근로자는 의무적으로 가입한 뒤 사후 탈퇴를 할 수 있다. 또 저소득층의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1%의 세제 혜택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영국의 DC형 퇴직연금은 2000년 3%에서 지난 2011년 40%로 11년 만에 13배 이상 급성장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 시행(2012년 7월 26일) 이후 신설된 기업에 한해 퇴직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미국의 401(K) 퇴직연금은 1인당 1만6500달러(약 1868만원)까지 소득공제가 된다. 만 50세 이상의 근로자는 5500달러의 추가 적립과 소득공제를 해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퇴직연금 소득공제 한도는 400만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을 볼 때 14.6%로 미국의 50세 미만 가입자(35.6%) 및 50세 이상 가입자(47.4%)와 비교해 매우 낮다.

이마저도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한 것이라 금융권에서는 소득공제 확대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있어왔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퇴직연금은 금융 상품이기 이전에 국민의 노후 보장을 위한 국가적 정책인 만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소득공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득 계층별로 세제 혜택의 차등화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금처럼 일괄적으로 세제 혜택을 늘릴 경우 추가로 납입할 여유가 있는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금융권 과당경쟁, 대기업 계열사 몰아주기 독버섯 = 퇴직연금 적립금은 7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사업자로 등록된 금융회사도 60개에 육박한다.

퇴직연금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금융 감독 당국은 과당경쟁이 심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대출을 빌미로 기업에 퇴직연금 가입을 강요하는 구속성 판매(꺾기)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가입시켜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있어왔다.

예를 들어 삼성그룹 자회사들이 삼성증권과 삼성생명, 삼성화재의 퇴직연금에 가입할 경우 운용 수익률이 낮아지거나 시장의 전체적인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계열사 편입 비중을 50%로 낮추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