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정체기…"세제 혜택 등 촉매제 필요"

"저희 부모 세대는 이미 80대 후반까지 살고 있습니다. 의료 기술이 더 발달하면 '100세 시대'는 이미 현실화된 셈이지요. 경제적인 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노후 생활은 어려워집니다. 퇴직연금만이 안정적 노후 생활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평균수명 81세, 은퇴 후 일자리 부족, 저금리 장기화…. 노후 준비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정부의 고민도 커져만 간다. 노후 대비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후 대비 경제생활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연금제도이다. 1988년 국민연금, 1994년 개인연금, 2005년 퇴직연금이 차례대로 도입되며 우리나라도 '3층 연금 구조'가 형성된 지 8년이 흘렀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은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거치며 정착돼가고 있는 과정이라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퇴직연금으로 쌓인 적립금이 70조원 규모로 성장한 가운데 은행, 증권사, 보험회사의 경쟁도 치열하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는 2006년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한 KDB산업은행을 찾아, 현행 퇴직연금 제도의 현황과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업은행의 연금신탁본부는 연금부와 신탁부로 나뉘어 있으며 직원 수는 68명이다. 연금 운영뿐 아니라 가입자 교육과 컨설팅, 계리 업무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승석 부행장(연금신탁본부장)은 지난해 1월 발령, 1년 반째 연금신탁본부를 이끌고 있다.

그는 "빚이 있으면서 노후를 위해 연금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며 "선진국처럼 퇴직연금이 발달하려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우수한 장기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퇴직연금 급성장, 국민연금 규모로 커질까 = 퇴직연금 가입자는 근로자 수 기준으로 46%. 가입 자격이 있는 근로자 중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가입할 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가입했다고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근로자 중 절반 이상이 아직 퇴직연금 고객이 될 수 있다.

문 부행장은 "지난 8년 동안 퇴직연금 시장은 급성장을 이뤘지만, 앞으로는 더디게 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국민연금 적립금이 300조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퇴직연금도 머지않아 그 규모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국민연금 도입 25년이 지났지만, 물가 인상을 고려할 때 연금 수령의 액수는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아도 페널티가 부과되지 않고 의무화 조항이 없어 사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문 부행장은 "근로자라면 다 퇴직연금에 가입해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준비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냐"며 "시기적으로 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업의 본업인 영업보다 종업원 복지에 더 많은 자금을 쓰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점차적으로 확대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퇴직연금은 노후 자금,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 현행 퇴직연금의 종류는 3가지다. 은퇴 후 급여가 정해져있고 가입 기업이 운용을 하는 확정급여(DB)형과, 근로자가 원하는 만큼 적립금을 쌓으면서 직접 운용을 하는 확정기여(DC)형, 그리고 DC형과 비슷하지만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가입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다.

퇴직연금 가입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산 관리의 방법이다. 어떻게 퇴직연금을 운용하느냐에 따라 은퇴 이후 돌려받을 수 있는 연금의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문 부행장은 "임금 인상률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보장이 있으면 DC형을 선택해도 좋지만, 한국처럼 주식시장이 들쑥날쑥한 상황에서는 정기예금이나 주가연계증권(ELS), 확정금리보험(GIC) 등 투자위험이 작으면서 금리가 비교적 높은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DC형에 가입하더라도 펀드에 전액을 투자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퇴직연금이 노후 대비용 자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상당 부분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예금하고 일부를 실적 배당형에 투자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산업은행 적립금 중 98%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가입돼 있다.

문 부행장은 "사람마다 투자성향이 다른데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은 안정 추구, 위험 추구, 중간형 중 안정 추구를 원하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저금리 기조가 오면서 달라지는 경향이 있고 퇴직연금 펀드 가입률도 상승 중이다"고 밝혔다.

DB형에 대해서는 "재무 담당자들이 운용을 하는데 자기 잘못으로 수익률이 낮아지면 회사에 손실을 끼치게 되니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편 산업은행은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아도 가입할 수 있는 다이렉트 뱅킹(direct banking)과 IRP를 연계, 인터넷뱅킹을 이용해 손쉽게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차별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들보다 약간 높은 3.3%의 금리를 제공하고, 다이렉트 뱅킹에서 자동이체되는 서비스도 운영중이다.

문 부행장은 "금리뿐 아니라 수수료 면제와 자금 운용 컨설팅, 계리 업무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다른 은행들과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세제 혜택' 절실, 퇴직연금 발전 위한 '촉매제' 필요 = 문 부행장은 정부에서 세금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는 이자소득세 면제와 퇴직소득세 이연, 연 400만원 한도에서 소득공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제도가 더 활성화되려면 아직은 미흡하다는 것의 그의 설명.

문 부행장은 "개인연금에 해당하는 연금 저축과 2011년 개편된 IRP가 묶여서 세금 혜택을 받고 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IRP의 경우 별도로 세금 혜택을 줘야 퇴직연금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 정부는 IRP 제도를 개편,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여윳돈을 투자할 수 있도록 하면서 소득공제 혜택을 포함시켰으나 최대한도에 개인연금 납입금도 포함된다.

문 부행장은 또 계열사를 많이 보유한 금융회사들이 퇴직연금 몰아주기 가입을 하는 것에 대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그는 "정부에서 규제를 하고 있지만, 몰아주기 관행이 심각해 공정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좀 더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공적인 역할을 하면서 퇴직연금 제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