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대통령의 중국방문 이후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체결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한·중 FTA나 한·중·일 FTA는 한국과 중국, 또는 한 중 일 3국 차원을 넘어 '글로벌 FTA게임'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 EU(유럽연합), 일본 등 선진경제권이 동시다발적으로 FTA(자유무역협정)협상을 적극 추진하면서 세계 통상질서가 바야흐로 3대 거대 FTA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12개국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Economic Partnership)에 이어 미국과 EU와의 환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이 새 출사표를 던졌다.
이에 맞서 중국이 중심이 된 한·중·일 FTA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Regional Comprehesive Economic Partnership) 등 동아시아 다자간 FTA 협상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 3대 FTA가 모두 타결될 경우 미국, 유럽, 아시아를 3대 축으로 하는 거대 경제블록이 등장한다. TTIP는 GDP(국내총생산)기준 세계경제비중이 45%이고, TPP는 38.4%, RCEP는 29.4%다.
세계 GDP의 80%를 차지하는 이 3대 FTA가 출범하면 세계 통상질서는 거대 경제블록 간 경쟁과 대립이 열을 뿜는 '신(新) FTA 삼국지'시대로 들어선다.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EU지도자들은 지난달 17일 "사상 최대의 양자무역협상'을 이달 중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EU 27개국과의 TTIP는 오바마 2기 행정부의 핵심 경제과제로 2년 내 타결이 목표다.
미국이 2010년부터 주도해온 12개국 TPP는 16차례 협상을 진행해왔고 연내 타결이 목표다.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아우르는 TPP와 TTIP를 통해 거대시장을 창출하고 글로벌 통상주도권을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TTIP는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옮겨가는 현실에서 EU와 합세해 '세계 최대 선진경제권'으로 한 데 묶어 수출을 증대시키고 글로벌 통상규범제정자(Rule Setter)의 역할을 지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미국의 통상정책은 과거 FTA보다는 WTO(세계무역기구)로 상징되는 세계주의에 충실해왔으나 근년 들어 수출증대를 목표로 한 지역주의(FTA)로 기조를 전환하는 추세다.
EU와 일본은 각각 수출확대와 대미관계 강화 등 정치경제적 이유로 미국의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은 선진국 주도의 이 같은 블록화가 중국의 고립화와 외부압박을 통한 시장개방에 그 목표가 있다고 인식하고 RCEP 등 역내 협력강화로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한국 중국 일본 아세안 인도 등 아태지역 16개국이 추진하는 RCEP는 올 여름 협상을 시작해 2015년 타결이 목표다. 아태지역에서 RCEP와 TPP간에 역내 회원국 수 확대와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물밑경쟁이 진행 중이다.
3대 FTA의 출현은 한국 수출에 새로운 도전이다. 경쟁국들의 FTA 체결확대로 한·EU, 한·미FTA 체결의 선점효과가 감소되면서 미국과 EU시장에서 경쟁 격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RCEP 16개국 중 일본 등 7개국은 TPP협상에 이미 참여중이고, 한·중·일 3국과의 FTA도 별도로 진행 중이다. FTA체결이 이리저리 겹치는 다중적·중층(重層)적 FTA시대다.
RCEP 협상은 TPP와 한중일 FTA가 가시화되는 시점에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여 3대 FTA가운데 가장 늦게 타결될 가능성이 짙다. 한국은 TPP에 간접적으로 참여압박을 받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3대 FTA 중 RCEP에만 참여중이다.
한·중·일 FTA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일 FTA는 한국입장에서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일본의 비관세장벽이 가장 큰 문제인데 TPP에서 얼마나 허물어질 것인지 우리로서는 관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중FTA는 우리 입장에서 중국시장 선점을 위해 시급하고, 중국 또한 TPP를 통한 미국의 포위망을 피하는 의미에서 긴요하다. 동아시아 대결구도 속에 한중 FTA가 성사되면 우리의 몸값은 저절로 높아진다.
지금까지 5차례 FTA 협상을 진행한 양국은 지난 주 부산에서 제6차 협상을 벌였다. 한·중 FTA 협상의 핵심은 민감한 국내산업 보호와 '높은 수준의 FTA 체결'이란 목표를 어떻게 함께 달성하느냐에 있다.
그동안의 협상에서는 양국의 민감한 관심사가 충돌하면서 적잖은 난항을 겪었다. 우리 측은 제조품목의 관세 인하 등 실리에 집중하는 반면 중국은 자국 중심의 동아시아 경제블록 구축에 관심이 높다.
관심·요구사항과 민감 품목 등을 놓고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고, 지난 4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5차 협상에서는 원산지와 통관절차에 대한 모델리티(기본지침)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다. 품목별 협상이 아니라 무엇을 담을지 바스켓의 기본 틀을 정하는 1단계 협상에 머물러있는 단계다.
양국 정상 간 이번 합의로 협상수위가 2단계로 한 계단 뛰어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최대로 민감한 분야는 역시 농수산 분야다. 중국은 세계 최대 농업국가로 우리와 농수산물 생산품목이 비슷하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중FTA가 발효되면 중국 농수산물 수입액은 향후 10년간 108억 달러 늘어나고, 농업생산액은 14.7% 감소한다는 전망이다.
정부는 농수산 분야 민감성을 충분히 반영해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거듭 다짐하지만 농수산업계는 '선(先)대책 후(後)개방'을 고집해 '대내협상'은 난관이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아세안 주도의 역내 포괄적 RCEP 등의 진행 추이도 한중 FTA 협상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중·미·일에다 EU까지 가세해 글로벌 FTA 삼국지를 연출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FTA허브 전략 또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박근혜정부는 한국이 TPP, RCEP, 한·중·일 FTA 등 거대 FTA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 역할을 하는 '신통상정책 로드맵'을 그려놓고 있다.
린치핀은 바퀴를 동력축에 연결하는 핀이다. 중국 주도의 RCEP와 미국 주도의 TPP라는 거대 바퀴를 연결하는 핵심축이 한국이 되겠다는 얘기다.
핵심이익이 충돌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 속에 어떻게 우리가 전략적 균형을 취하며 핵심축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FTA는 체결이 능사가 아니다. 더욱 세심하고 체계적인 게임전략을 다시 짜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