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 병원 폐쇄, 중단하라" = 서울시 남현동 한국주류산업협회 앞에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KARF) 직원들이 카프 폐쇄에 반대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카프 직원들은 지난달 19일부터 농성을 시작, 지난 10일 저녁에는 촛불시위도 개최했다.
우리나라에 하나 뿐인 알코올 중독 치료·예방·재활 연구재단이자 공익병원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KARF, 이하 카프)'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카프에 병원운영비를 지원했던 한국주류산업협회에서 3년 전부터 출연금 지원을 중단했고, 꾸역꾸역 버텨오던 병원은 지난 5월부터 사실상 운영이 중단됐다.
사실 카프는 주류업체들에 의해 세워졌다.
알코올 중독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주류협회 차원에서 알코올 중독자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0년 기금을 모아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지난 2004년에는 경기도 고양시에 국내 유일의 알코올 중독 치료 전문병원인 카프를 건설했고, 한국주류산업협회를 통해 매년 50억원의 출연금을 카프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실제로 현재 한국주류산업협회 본부장으로 재직중인 조성기 박사가 지난 1997년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일하며 소비자 보호사업 연구용역을 시행한 것을 계기로 설립됐다.
조 본부장은 그동안 알코올 중독 문제가 이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봐야하며, 알코올 중독자 치료사업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오는 등 카프 설립의 취지와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그는 '세계의 음주문화'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에서 이제 알코올 중독자 문제는 중독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질병에서 사람을 구제해야 하는 문제가 됐다"며 "알코올 중독의 질병관은 미국답게 관련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알코올중독 치료사업의 연간 수입이 1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으며, 수십만 명이 이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프에 지원금을 끊은 한국주류산업협회의 결정은 이와 같은 카프 설립 취지 및 알코올 중독자 치료 사업의 중요성에 다소 역행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주류업체들이 알코올 중독 문제에 손을 놓고 방관하기만 하려는 모양새는 아니다. 카프에 지원을 중단하고 병원을 폐쇄하는 대신, 알코올 중독 예방활동에 더욱 힘을 쏟는다는 입장이다.
주류업체들은 앞으로 중독자 치료보다 중독 예방·홍보에 알코올 중독 문제 해결의 초점을 맞출 방침. 카프 설립 당시에는 국내에 전문적으로 알코올 치료를 담당하는 병원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알코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들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 1997년 카프 설립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1990년대 후반에는 국내에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이 별로 없었지만, 현재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만 200여개에 달한다.
또한 주류협회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주류협회가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을 운영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카프 설립을 기획했던 조성기 한국주류산업협회 본부장은 "처음 카프를 기획했을 때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라며 "주류산업계가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 가치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카프 측에서는 병원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주류협회는 다른 생각이다"라며 "지금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정확히 무엇이 옳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한편 주류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카프 설립 배경의 이면에는 '건강증진부담금'을 내지 않으려는 주류업체들의 꼼수(?)가 숨어있다는 후문이다.
카프의 경우 지난 1997년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소비자 보호사업 연구용역을 시행한 것을 계기로 설립됐는데, 당시는 국회를 중심으로 모든 술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법률안이 추진됐던 시기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주류업체들이 건강증진부담금을 내는 대신 알코올 중독자 치료를 위한 카프 설립을 제안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술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대신 카프 병원을 설립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주류업계 일부 관계자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술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나라는 태국, 뉴질랜드 등 2개 국가 밖에 없다"며 "술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면 주류업계보다 술값 인상을 우려하는 일반 국민들이 먼저 반대하고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30여명에 달하는 카프 직원들은 지난달 19일부터 서울시 남현동 한국주류산업협회 앞에서 카프 폐쇄 및 출연금 지원 중단에 반대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카프 직원들은 지난 10일 저녁 7시 이후부터 주류산업협회 앞에서 카프 패쇄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개최했다.
카프 관계자는 "주류산업협회가 병원사업보다 알코올 중독 예방·홍보로 역할을 갑자기 전환하고 병원폐업을 추진하는 것은 최초 카프병원의 설립취지와 전면 대치되는 형국"이라며 "국내 알코올 문제 해결에 앞장서 온 지난 10년의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