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Tax gap' 조사 용역발주…세무조사·체납징수 활용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확보의 핵심으로 지목했던 '지하경제'의 구체적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그동안 학계와 전문가집단 사이에서 추정치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지하경제의 실질적인 규모를 파악하고, 여기서 실제로 세금추징이 가능한 부분을 추려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금추징 규모의 현실성 여부가 좀 더 명확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정부는 향후 5년 동안 지하경제양성화를 통해 총 27조2000억원의 추가세수를 확보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워 둔 상황이다.
16일 국세청 등에 따르면 국내 지하경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외부 연구기관에 '택스 갭(Tax gap)' 추정모델 분석 작업을 용역발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택스 캡이란 납세자들이 실제 소득에 맞게 내야하는 세금과 과세당국에 납부된 세금의 차이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국가 전체적인 탈세규모와 비율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국세청은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내 조세개혁특별위원회 비공식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택스 갭 분석에 본격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국세청은 향후 이 자료를 세무조사 및 체납징수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과세당국은 이번 택스 갭 분석을 통해 그동안 추정치로만 제시됐던 지하경제의 실질적인 규모를 가늠하는 한편, 특히 소득탈루율이 높은 특정계층이나 직업군을 보다 명확히 파악해 제대로 세금을 물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실질적인 지하경제 규모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동안 학계, 연구기관 등에서 국내 지하경제 규모가 150~300조에 이를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으나 이 규모는 추정치에 불과할 뿐, 아직까지 전체적인 공감대를 얻은 조사결과는 전무한 실정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데이터는 작년 지하경제 분야 권위자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린츠대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가 분석한 '1999~2010년 주요국 지하경제 추산규모' 보고서.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하경제의 비중은 평균 26.3%로 집계됐다. 이는 분석대상 39개국 중 10번째로 그리스(27%), 이탈리아(26.9%)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의 지하경제 비중이 10%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 지하경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가 자영업자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지하경제 44.3%가 자영업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이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22.2%)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뒤늦게 택스 갭 파악에 나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확보 목표 등 방향성은 잡았지만, 어느 부분에서 새롭게 세금을 걷느냐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세청이 대기업·대재산가, 역외탈세, 민생침해사범, 고소득 자영업종 등 이른바 4대 지하경제 역점 조사 분야를 선정했으나 서민층 쥐어짜기라는 불만여론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안팎에선 그동안 정부의 지하경제양성화 정책방향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지하경제란 과세당국에 세원이 노출되지 않는 이른바 '세원사각지대'를 의미하는데 서민, 영세자영업자들의 현금거래도 학문적으로는 모두 지하경제로 분류된다.
일례로 시장 가판에서 카드 단말기 없이 장사하는 영세상인, 길거리 포장마차, 먹거리 상인도 모두 학문적으로는 지하경제에 속하는 셈이다. 정부 지하경제양성화 정책이 자칫 서민층 쥐어짜기 논란으로 흐를 수 있는 대목.
이를 감안할 때 일각에선 정부가 실제 지하경제 가운데 과세가 가능한 부분이 10% 안팎으로 매우 미미할 것으로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정부의 택스 갭 분석 작업은 이런 부분들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명확히 씻어내기 위한 조치로도 풀이된다. 향후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의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작업의 중요성은 상당히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이번 작업은 박 대통령의 의중이 상당히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1년 국회 기획재정위원 활동 당시 "미국 국세청이 택스 캡을 주기적으로 공표해 탈세 규모를 파악하는 것처럼 우리도 탈세율 실태 파악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이달 26일 여의도에서 국세청 후원으로 열리는 2013년 국세행정포럼 논의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날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실정에 적합한 탈세규모 추정모델 개발'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날 택스 갭 분석결과와 관련된 일부 내용들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