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재정 보전방안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중앙정부가 나름대로 보전방안을 내놓았지만 지자체들의 만족도는 매우 낮다. 현재로서는 절충점을 찾기 힘든 팽팽한 평행선 행보만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정부도 지자체들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재정 보전방안을 만들게 된 유인(취득세 영구인하 등)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취득세율 영구인하와 영·유아 무상보육 확대에 따른 지자체의 재정 보전방안을 발표했다. 당초 정부는 지난달 13일 재정 보전방안 발표를 예정했지만 세부내용에 대한 지자체들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2주 동안의 '숙려기간'에 들어갔다.
하지만 2주 후 정부가 당초 발표 예정이었던 안과 대동소이한 안을 발표하면서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폭발했다. 정부는 지자체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보전방안을 마련했다고 주장했지만 지자체는 정부가 지자체들의 의견에 귀를 닫은 채 일방통행을 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급기야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달 26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만약 정부가 지자체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원안을 강행하려 한다면 국회 입법과정에서 지자체의 모든 역량과 수단을 동원해 지방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정부의 재정여건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라며 지자체와의 일전(一戰)으로 인한 '내홍'을 감내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의 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돈' 앞에 장사 없다? 갈라 선 정부-지자체 = 정부의 지방재정 보전방안의 골자는 취득세율 영구인하, 영·유아 무상보육 확대로 인해 구멍나는 지방재정을 보전하기 위해 연간 5조원 규모의 재원을 중앙정부가 확충해 주는 내용이다.
우선 국세인 부가가치세 일부를 지방정부 세수로 돌리는 지방소비세 전환율을 현행 전체 부가세수의 5%에서 매년 2%p씩 총 6%p를 인상 2015년 11%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취득세 영구인하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액 2조4000억원을 채우게 된다.
또 2015년부터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지방소득세 세액공제·감면을 축소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 지방정부가 1조1000억원의 재원확보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영·유아 무상보육 국고보조율도 10%p(8000억원) 인상하고, 정신요양시설과 장애인생활시설, 그리고 노인생활시설 중 노인양로시설 운영을 중앙정부로 환원해 연간 6000억원의 지방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가재정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향후 10년 동안 연평균 5조원 가량의 지방재정 확충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풍성한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를 받아든 지자체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다. 지자체들은 정부안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형태에 불과하며 해마다 지자체들이 감당해야 할 복지재원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자체들은 영·유아 무상보육 국비부담 비율을 10%p가 아닌 최소 20%p이상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부가 지난 2009년, 올해 지방소비세를 현행 5%에서 10%로 5%p 인상을 약속했다는 점을 들어 지방소비세율 6%p 인상 외에 5%p를 추가 인상해 지방소비세율을 부가세수의 16%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분권교부세 사업과 관련해서는 지난 2008년 감사원이 권고한 3개 생활시설사업 국고환원 조치를 100%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재원기준 50%를 환원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노인양로시설을 포함한 3개 생활시설사업 전부를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지방세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복지사업과 취득세 인하에 따른 지방정부의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는 연간 7조원 가량의 추가재원이 요구된다"며 "정부 추산대로 5조원이 확충 대더라도 연간 2조원이 모자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곳간' 둘러싼 다툼…"나갈 돈 많은데 들어올 돈이 없다" = 공생관계여야 할 정부와 지자체가 갈등관계로 전환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양측 모두 '돈줄'이 여의치 않기 때문.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이 시급한 정부가 먼저 취득세 영구인하 카드를 뽑았다.
취득세는 지방곳간의 핵심 돈줄 중 하나다. 지자체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재원보전 대책이 필요했고 정부는 지방소비세율 상향조정을 통해 이를 메우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 또한 무한정 지방곳간을 채우기 위해 수입을 조정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8월말 현재 세수실적(내국세)은 전년동기 대비 5조8534억원이 부족한 129조6546억원이며 세수진도율 또한 65.1%에 불과,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7∼8조원 수준의 세수결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정부는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년 세수상황 또한 현재보다 눈에 띄게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해 작성한 공약가계부에 따라 정부는 징수 목표한 세수 이상의 세수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돈줄로 활용하기로 한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감면 정비는 현실적인 난관이 상당한데다 괄목할 세수확보 효과를 동반할 수 있을지 여부에 무수한 의문부호가 찍혀 있는 상황이다. 괜히 증세(增稅) 주장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자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세수입이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고 허덕이고 있는 것처럼 지방세 수입 또한 급감하고 있기 때문. 최근 서울시가 올해 예산에서 3000억원의 사업비를 긴급 삭감하는 내용의 추경을 편성하는 등 돈맥경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경기침체와 정부의 취득세율 인하 조치에 따라 올해 지방세수 결손액이 7966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시에 앞서 경기도 또한 지난 8월말 3875억원의 감액 추경예산을 도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경기도의 올해 세수결손 전망치는 사상 최대규모인 1조511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다른 지자체들은 당장 세수 결손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어서 감액 추경은 고려하지 않고 있지 않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세수 확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지자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미 무상보육 등 각종 복지정책으로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내년 기초연금 부담까지 짊어질 경우 지방곳간의 여건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재원 보전대책에 지자체들이 불평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 최종안에 따르면 당장 내년부터 지자체들이 떠 안을 재정부담은 1조8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10년 동안 지방교부금 1조5000억원을 더 주기로 했지만 향후 증가할 재정소요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지자체들의 주장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중앙정부 정책에 의해 해마다 늘어나는 복지재원과 세입구조 악화로 대부분의 지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 역시 힘든 상황이지만 자신들이 벌인 정책을 지자체보고 감당하라는 식은 곤란하다. 보다 현실적인 (재원)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원론적인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현 부총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양측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배분 문제를 고려했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현 부총리는 "경기가 활성화 되어 세수규모가 커지면 교부세가 늘어나기 때문에 (지방정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파이를 키워서 나눠야 한다. 취득세 인하에 따른 급한 것은 보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