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與)·야(野)·정(政)', 혈전의 시간이 다가온다" = 120여개를 훌쩍 넘는 조세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정 혈전의 시간이 차츰 다가오고 있다. 조세법 개정안 각 건별로 이들의 접근법은 같은 듯 또 다르고 복잡하다. 굳이 구분을 한다면 공격수인 야당과 수비수인 여당과 정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여당도 공격수 역할을 한다. 조세논리 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 균형보다는 정치적 타협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조세법 '입법전쟁'이 본격적인 개막을 앞두고 있다.
한 치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한 입법공방이 예상된다. 올해 정기국회 세법개정 논의는 비과세·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로 복지재원에 투입될 재원을 확보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기본 구상 실현가능성을 타진할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이를 관철시켜야 할 여당, 특히 정부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야당의 상황도 목표지점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가 않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 대(對)여, 대(對)정부 공세의 끈을 한껏 잡아당겨야 한다. 특히 핵심 당론으로 뽑아 올린 '부자감세 철회'를 통해 존재감을 과시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현 시점에서 정기국회 세법개정 논의는 여야, 정 모두에게 '실리(實利)'이며 '실리(失利)'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최대 대척점이다.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다는 측면에서 삼자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과의 싸움'
이번 정기국회 세법개정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세법개정안은 정부 입법안을 포함해 120여건을 훌쩍 넘는 방대한 수량이다. 연말까지 남은 시간(13일 현재 기준)은 꼬박 48일.
갈 길이 바쁘다. 하지만 세법심의를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이번 주(11일∼15일)는 인사청문회(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 등 정치 일정이 겹쳐 사실상 소진된 상태이며, 내주에는 대정부 질문(19일∼25일)이 예정되어 있다. 상임위원회가 작동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11월 마지막주(25일∼29일)나 되어야 기획재정위원회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부수법안이기 때문에 내년 예산안 법정처리시한(12월2일) 내에 심의 및 본회의 통과가 완료되어야 하지만, 현재 정치일정 등을 감안할 때 이미 물 건너 간 상황이다.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심의대상 법안을 조세소위로 넘겨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세법심의는 빨라야 12월 첫째 주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추가적인 절차(기재위 전체회의→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세법심의 기간은 길어야 2∼3주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발빠르게 움직여 준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정치판의 속성상 이를 기대하기는 무리인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이 현재 국정원 댓글 문제와 관련한 특검을 관철시키기 위해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모든 상임위 일정에 대해 '보이콧' 선언을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꽁꽁 얼어붙은 정국. 이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정기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물론, 예산안의 필수적으로 부수되는 세법개정안 처리 또한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氣)싸움'과 '눈치싸움'
정기국회 세법개정 논의를 둘러싸고 여야의 '기싸움'이 극에 달할 조짐이다. 기싸움의 테마는 ▲경제활성화 ▲증세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미 여야는 지난달 국정감사 기간 동안 이 두 테마를 놓고 확연한 입장차를 보였다.
지난 국정감사 기간 동안 여당은 경제활성화에 방점을 찍고 세무조사 등으로 기업들을 과도하게 압박하지 않는 한편으로 대기업에 쏠린 비과세·감면제도 축소를 제안한 반면 야당은 비과세·감면 축소를 넘어 적극적인 증세를 요구했다.
특히 야당은 국정감사 기간 내내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단행한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증세를 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반해 정부와 여당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대기업과 부자 등에 대한 증세는 불가하다는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정감사는 이번 정기국회 세법개정 논의 과정 전반에 걸쳐 펼쳐질 여·야·정 대립의 양상을 미리 보여준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야당은 이미 정기국회 세법개정 논의 과정에서 부자감세를 철회하겠다는, 초대형 선전포고를 날린 상황이다.
정치적 입지를 감안할 때 여당도 야당도 전선(戰線)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상태다.
여야의 '정치게임'을 떠나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거대한 반발여론에 부딪혀 사상 유례 없는 홍역을 치르는 등 난감한 처지에 몰려있다. 세법개정안의 핵심사안 중 하나였던 각종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문제로 국민적 반발을 샀다.
세법개정안 발표 닷새만에 방향을 수정,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출발점을 상향조정(당초 연소득 3850만원→수정 연소득 5500만원)하는 등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안팎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수정가능성이 남아있는 대목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법개정안 곳곳에 '휘발성'이 높은 제도개편 방안이 담겨 있다는 측면에서 경우에 따라 여야가 내미는 정치적 타협안에 밀려 기존 정책기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여야 양쪽을 넘나들며 고된 '눈치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