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새해 예산안 법정처리시한(매년 12월2일)을 넘기는 것은 '일상'이 됐고, 예산안을 비롯해 세법개정안 등 국민생활 및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률안 등을 볼모로 삼고 이와는 별 상관 없는 정치 문제로 대립하다 마지막 날 '벼락치기'로 통과시키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하는 등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던 19대 국회는 2년 연속 해를 넘겨 예산안을 처리, 역대 국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진귀한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틈만 나면 국민을 입에 올리면서 정작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권의 '뻔뻔함'과 국회선진화법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의 후진적 행태가 여전한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 재차 증명됐다는 사실에 참담하기만 하다.
2013년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국회는 국정원 개혁안 등 정치이슈에 매몰, 대립하며 시간을 몽땅 허비했다.
막판에는 외국인투자촉진법까지 얹어 다툼을 벌이면서 국회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였다. 예산안 등이 통과된 이후 '쪽지예산' 논란 등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졸속'의 후유증이 아닐 수 없다.
겉으로는 세수가 부족하다며 정부에 대책마련을 닦달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지역구를 위한 예산을 제대로 된 심의조차 없이 힘으로 밀어붙여 챙기는 일부 거물 국회의원들의 치졸한 양면성은 자연스럽게 혀끝을 끌끌 차게끔 만들고 있다.
예산안의 늑장처리만이 문제가 아니다.
세법개정안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보여준 움직임 또한 기가 찰 노릇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3억원->1억5000만원)을 하향조정하는 법안과 기업 최저한세율 인상안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뚝딱 합의해 처리한 부분은 도저히 납득하기가 힘들다.
어떤 명분과 필요성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생략됐다.
어느 계층이든 세부담을 올리려면 충분한 설득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 같은 과정을 싹뚝 잘라버린 채 하루아침에 이들을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처지로 몰아세웠다.
특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와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인하, 법인세 최저한 세율인상을 여야가 흥정을 통해 맞바꾼 것은 세법의 취지와 입법 명분을 망각한 행위가 아닌가.
세수효과도 크지 않을 뿐더러 폐지와 신설 사이에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A법을 폐지하는 대신 B법을 강화하려면 서로 논리가 맞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유추하자면 올해부터는 소득세와 법인세 등 세금을 망국적인 부동산투기 수익으로 벌충하라, 앞으로 부동산 투기에 좀 더 노력하라는 메시지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판국에도 정치권은 오는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운운하며 '잇속' 챙기는데 여념이 없다.
당리당략을 떠나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라는 국민들의 기대와 명령을 지난 연말 정치권은 오랜 고생 끝에(?) 외면하고 말았다.
세부담을 짊어질 국민들에게 제대로 묻지 않고 지난 연말 '빅딜'을 성사시킨 잘못을 심판해야 하는 숙제까지 국민들에게 떠안긴 '죄'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