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관리' 수업을 듣고 있는 86명의 고등학생들. 지루하고 따분할 것이라 여겨졌던 FTA 원산지 관리사 수업에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등 활기차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세관에 들어온 지 30년이 다 됐어요"
이 한마디에 장내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세관에 한 평생을 바친 '관세맨' 관세청 내 한 둘이 아니겠지만 세관에 30년 근무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환호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24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서울세관 청사에 특별한 손님 86명이 찾아왔습니다.
서울세관 FTA3과 김민호 관세행정관이 "저도 세관에서 30년을 일했지만 품목분류가 쉬운 업무가 아닙니다"라는 말에 "맞아요"라며 공감대를 형성했던 이들은 세관 신입직원들도 아닌 앳된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FTA 원산지 관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세관을 찾은 학생들은 지난 겨울방학 때부터 이어진 FTA 기본교육을 받고 지난 22일과 24일, 25일에는 매일 8시간씩 FTA 원산지 관리에 대한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들이 수업을 다 들으면 다음달 26일 원산지 관리사 자격증 시험을 보게 됩니다.
FTA를 체결한 국가들은 협정에 따라 원산지를 증명하면 특혜관세를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FTA 원산지 관리사'입니다.
FTA 원산지 증명을 하는데 필요한 서류가 복잡할 뿐 아니라 만약 원산지가 아닌 것으로 판명나면 관세를 토해내야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FTA 원산지 관리 업무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전문가도 부족하고 기업 현장에서도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자신들이 해결하겠다며 86명의 고등학생들이 세관에 찾아온 것입니다.
◆…(왼쪽부터) 경기상업고 3학년 원현철 군, 매향정보고등학교 3학년 백소연 양, 성암국제무역고등학교 3학년 권지민양. 이들은 'FTA 원산지 관리' 분야가 생소하긴 하지만 그 어떤 자격증보다 경쟁력이 있다며 서울세관의 교육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경기상업고등학교 글로벌유통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원현철 군은 친구들이 파생상품이나 펀드 등 금융권에 관심을 둘 때 'FTA 원산지 관리'를 열심히 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판단, 스스로 시험을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원 군은 "FTA 원산지 관리사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나만의 경쟁력을 기르면 취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지원하게 됐다"며 "대학생들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쟁력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품목관리 전문가가 되겠다"고 자신있게 밝혔습니다.
FTA 수업을 듣고 원산지 관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매향정보고등학교 3학년 백소연 양은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어떤 부분부터 해야할지 몰랐는데 교육을 받으니 이해하게 됐다"며 "생소한 자격증이다보니 친구들이 처음에는 뭐냐고 하다가 지금은 취업이 잘 된다는 소리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암국제무역고등학교 3학년 권지민 양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FTA를 많이 체결하고 있지만 원산지 관리 업무는 상당히 어려운 편이라고 들었다"며 "어려운 분야에서 열심히 해보고 싶어서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원산지 관리의 기본이 되는 품목분류는 세관 직원들도 힘들어하는데요.
품목분류 강의를 했던 김 관세행정관은 "여러분들이 자격증 시험을 공부한다길래 나도 시험문제를 풀어봤다. 내가 몇 점이 나왔을 것 같냐"라고 질문하자 학생들은 "100점"이라고 외쳤습니다. 학생들에겐 이미 세관에서 실무를 하고 있는 관세공무원이 너무나도 대단해보일텐데요.
김 관세행정관은 "70점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그는 "관세청 시험 커트라인이 60점이다. 내 점수도 아슬아슬하다. 그만큼 품목분류가 어렵다는 얘기"라며 "외우라는 것을 꼭 외우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서울세관에서의 수업이 끝나면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공부반'을 만들어 시험준비를 한다고 하는데요. 시험에 합격하든 아니든 세관에서는 이들을 모두 관세사무소와 연결시켜주는 '잡매칭(Jop matching)'을 한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잡매칭' 행사로 115명의 FTA 전문가들이 취업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번 교육을 준비한 서울세관 FTA1과 김호경 관세행정관은 "요즘 취업이 어렵다보니 학생들의 열기가 대단하다"며 "우리의 바람은 이들 모두가 시험에 합격해 어려운 FTA 원산지 관리 시장의 꿈과 희망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