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CA 국내 상륙 초읽기…금융권 부산한 움직임

금융회사, 7월부터 미국인 계좌 정보 국세청에 신고한다

미국 납세자에 대한 세금 감시망이 한국까지 넓혀지게 됐다.

한미 양국 정부의 조세 정보 교환 협정에 따라 해외 금융계좌 신고법(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이하 FATCA) 세부 규정이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향후 시행되는 FATCA에 의하면 국내 금융회사에 고액 예금을 맡겨둔 미국인의 정보가 한미 양측 국세청에 빠짐없이 알려진다. 여기서 미국인이란 재미 교포뿐 아니라 미국에서 사업하는 한인, 기업 주재원, 유학생, 운동선수 등 미국 세법상 납세 의무를 진 사람들이다.

FATCA는 미국 정부에서 부유층의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해 만든 법. 납세자의 해외 금융거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2010년 제정됐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은 은행은 미국원천소득(이자·배당 등)의 30%를 원천징수 당한다.

FATCA 시행은 우리 금융시장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

정부는 금융회사의 시스템 개선 작업에 착수한 동시에 금융 이용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FATCA 시행을 앞두고 금융회사와 금융 이용자 양쪽에 무거운 책임이 주어지고 있다. 

□금융 계좌 신고 의무, 개인에서 은행으로= 미 조세 당국의 재산 신고 제도는 과거부터 있어 왔다. 현행 FBAR(Report of Foreign Bank and Financial Accounts)에 의해 해외은행에 1만달러(약 1024만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은 재무부에 1년에 한차례 신고해야 했으나 상대국 정부의 협조가 없으면 계좌 추적이 어려웠다.

하지만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되는 FATCA는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회사가 금융계좌의 전산 기록을 조사하고 실소유주가 미국인인지 확인 후 계좌의 정보, 즉 예금주 이름과 잔액, 이자 등을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 대상은 신규 계좌의 경우 올해 6월 30일 기준 잔액 5만달러(약 5118만원) 이상인 고액 계좌이다. 1년 중 한번이라도 예금이 7만5000달러를 초과한 계좌도 신고해야 한다. 기존 계좌는 연말 잔액이 기준이 된다.

내년 9월부터는 한국과 미국의 국세청이 이 계좌 정보를 서로 공유한다. 100만달러(약 10억3000만원)를 초과하는 초고액 계좌는 내년 6월까지, 5만달러~100만달러 고액 계좌 및 단체 계좌는 2016년 6월까지 확인을 완료해야 한다.

신규 계좌의 경우 금융거래 신청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예금주 정보가 손쉽게 파악된다. 문제는 기존의 고액 계좌를 보유한 예금주이다.

미국 세법상 본토에서 소득이 있고 직전 연도에 31일 이상 체류했거나 최근 3년 동안 183일 이상 거주하면 납세의무를 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들이 자녀를 장기간 유학 보낸 경우 유학생 명의의 예금을 가입시켜도 FATCA 신고 의무를 진다.

FATCA가 시행되면 금융회사는 신고의 부담을, 예금주는 납세의 부담을 안게 된다. 한국 금융회사들은 한미 양측 정부의 협정에 의해 신고 누락 시 부과되는 페널티를 면제 받을 수 있으나 1차적인 책임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

보험 업계 전문가는 "FATCA 시행 목적은 미 당국에 보고되지 않은 해외 자금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고 이를 지속 관리함으로써 세원 확보뿐 아니라 증여, 상속 등 기타 세금에 장기 적용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머니 무브(money move) 예고, 탈세인가?= 시중은행의 한 PB(Private Banking) 팀장은 "납세의무를 지키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해외 자산을 분산 예치하거나 예금을 금, 현금 등 실물로 바꿔 세금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미 FATCA 협정에 의하면 대차대조표상 자산이 1억7500만달러 이하이거나 계좌 잔액의 98% 이상이 지역 고객인 소형 금융회사는 신고 의무가 경감된다. 이 때문에 세금을 피해 예금을 분산 예치하거나 협동조합 등 소형 금융회사로 이전하는 자산가들도 늘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PB 팀장은 "지금까지 상담한 고객의 경우 100% 신고하도록 설득했다. 신고액 기준이 은행별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자산 관리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정부로부터 편법을 이용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도 "1차 책임이 금융회사에 있는 만큼 정부가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없지만 만일 신고를 안했다가 뒤늦게 적발되면 미국 정부로부터 매우 악의적인 탈세자로 오인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미국 국세청(IRS) 자료에 따르면 2분기 중 시민권 및 영주권을 포기한 해외 거주자 수가 1130명으로 사상 최고 수준에 달했다. 1년 전과 비교해 6배 가량 증가했다.

□미국의 깡패법? 금융권 혼란 예상돼= 미 통화 당국은 연 0%대의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피해 한국의 금융회사에 예금을 맡기는 자산가들도 적지 않다.

한 정부 당국 관계자는 "스위스 등 해외 비밀 계좌로 자금을 빼돌리는 탈세자를 추적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스위스 은행에 재산 신고를 강제했었다. 납세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억울할 수 있지만 세금 탈루를 붙잡겠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FATCA의 초국가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한편에서는 이 법에 대해 소위 '깡패법'이라는 인식도 갖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FATCA가 상호조약이긴 하지만 미국 정부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깡패법이 맞다"고 말했다.

한 세무사는 "FATCA가 불평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은행은 한국인 계좌에서 10달러 이상의 이자가 발생하면 우리 정부에 자료를 넘겨주기로 했는데 이는 이미 기존의 조세조약에 의한 것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미국인 신분을 조사하고 확인하기 위해 1~2년의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국세청이 한국의 홍길동 씨에게 과세하려면 주민등록번호나 주소와 같은 정보가 필요한데, 그가 미국에서 데이비드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사회보장번호도 다르다면 같은 사람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금융권의 시행착오도 예상된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의 FATCA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시스템 개발과 직원 교육에 착수한 상태이나 일선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신규 고객의 경우 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아 미국인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지만 기존의 고객이 큰 문제이다. 사람이 일일이 다 분석할 수 없는 일인 만큼 시스템으로 갈 수밖에 없어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만일 FATCA 규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 내 자산 중 30%를 페널티로 부과하거나 계좌를 동결시켜 영업을 퇴출하겠다는 것이라 회사 차원에서 회계 법인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