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신고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도가 시행 전인 만큼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고 불확실성이 크니까요. 심지어 신고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오는 7월 1일부터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미국 납세의무를 진 고액 예금자 조사에 착수한다. FATCA(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시행에 따라 미국인의 금융 정보가 국세청(IRS)에 넘겨진다. 기준은 5만 달러(약 5110만원) 이상이며 예금이 해외 어느 은행에 있어도 대부분 감시망에 걸려들 전망이다.
우리말로 해외 금융계좌 신고법이라 일컫는 FATCA는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고액 예금자의 납세 정보를 신고할 의무를 진다. 자산가의 입장에서 금융 정보를 국세청에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항영(사진) 외환은행 PB본부 세무팀장은 "고객들에게 자산 신고에 대해 안내하는 동시에 이를 피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고 전했다.
미국 세법은 시민권자, 영주권자뿐 아니라 미국에 거주 중인 주재원, 사업가 등 소득이 있으면 미국인으로 본다. 해외은행에 고액의 예금을 맡겨 둔 재미 교포 등 미국 납세자들은 세금 추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FATCA 규정을 이행하려면 금융회사 직원들은 고객의 금융거래 내역과 직업, 주소 등 개인 정보를 조사해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미신고 시 페널티는 금융회사에 부과된다.
문제는 FATCA 시행 전 1970년대 이미 미국에서는 FBAR(Report of Foreign Bank and Financial Accounts) 제도가 있었다. 해외 계좌에 1만달러 이상을 맡기면 '예금주가' 재무부에 신고해야 했다.
따라서 FATCA에 의해 재산 정보가 알려지면 FBAR 규정에도 걸려들어 납세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 FBAR 위반에 따른 과징금은 예금의 50%까지 부과될 수 있다.
FATCA가 제정된 2010년 이후 국내 은행과 보험사에는 해외 고객으로부터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 팀장은 "이민 가기 전 한국에서 보유한 금융 자산을 보고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의가 가장 많다"고 소개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FATCA 협상안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미국인의 예금 정보를 신고하지 않았을 때 부과 받을 수 있는 페널티는 면제됐다. 그렇지만 정부 간 협약에 의해 대형 시중은행 및 보험사들은 1차적으로 신고 의무를 지며 우체국, 저축은행, 조합은행의 경우 예외가 인정됐다.
이 팀장은 "하지만 미국에서 거주하거나 사업하는 분들은 대형 은행이 아니면 믿지 못하는 성향이 있어 신고를 피하려고 고액 예금을 옮겨 넣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금이나 다이아몬드 등 실물 자산은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금 예금 및 금 펀드는 신고 대상에 포함된다.
무엇보다 FBAR 규정은 미신고 적발 시 금액이 크고 고의적인 사실이 드러나면 형사처분까지 내려지는 만큼 금융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이 팀장은 "미국인 추정 정보가 있으면 고객에게 안내문을 보내 확인을 받으며 인터넷뱅킹에 접속하면 알림창이 뜨도록 만들 예정이다. 국세청에 보고해야 하는 시간이 1~2년 정도 남은 것을 감안할 때 이 사이 연락이 한번도 안 닿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100만달러 이상을 보유한 초고액 자산가는 내년 9월부터, 5만 달러~100만 달러의 예금자는 2016년부터 미 국세청에 자료가 넘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