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계좌 실사, 실질지배자 파악 등 쉽지 않아
방카슈랑스·신탁형 펀드 등 실사의무자 불분명
국내 금융회사들이 미국 해외금융계좌 납세협력법(FATCA)에 따라 당장 오는 7월부터 미국인 계좌 정보를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지만 법률 쟁점이 여전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27일 금융조세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금융조세포럼(회장: 김도형 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은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뜨거운 현안 중 하나인 'FATCA의 법률쟁점'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FATCA는 미국 정부에서 부유층의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해 만든 법. 납세자의 해외 금융거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2010년 제정됐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금융기관은 미국원천소득(이자·배당 등)의 30%를 원천징수 당한다.
한국과 미국 간 FATCA 관련 협정이 지난 3월 7일 타결됨에 따라 지난달 27일에는 금융위원회가 세부 규정을 발표하는 등 속도감 있게 진행중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태경 법무법인 광장의 공인회계사는 "FATCA는 여신을 빼고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회사가 금융계좌의 전산기록을 조사해 국세청에 보고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의가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다"며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법률적 쟁점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FATCA 규정 자체에 허점이 많다는 점이 지적됐다.
오는 6월 30일 현재 잔액 또는 가액이 5만 달러(현금가치 보험계약 또는 연금계약의 경우 25만달러) 이하인 기존 계좌 및 이후 연도말 기준으로 100만 달러를 초과하기 전에는 실사대상에서 제외되는데 그 시기에 맞춰 분산예치했다가 이후 합산할 경우 사실상 규정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이 상당하다.
또 6월말 현재 금융기관별 잔액 또는 가액의 합산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타 금융사나 한 금융사 내에서도 업종이 다른 자회사에 분산예치할 경우 실사 의무대상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태경 회계사는 "법인계좌의 실사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며 "수동적 비금융법인의 경우 자연인인 실질지배자를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금융사에서 파악해 내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기존 법인계좌의 실사시 보고대상에서 제외되는 상장법인 여부, 능동적 비금융법인 여부 등의 확인 절차가 불분명해 실제 실사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세부적인 쟁점사항들도 여전히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그에 따르면 보고대상에서 면제되는 금융기관에 상당수 로컬 금융기관들이 제외되고 보고대상에서 면제되는 상품의 경우 세부 요건을 일일이 따져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상당하다.
예를 들어 퇴직 또는 연금계좌의 경우 세제혜택 대상인지, 계좌에 대한 한국 과세당국에 대한 연간 정보보고가 요구되는지, 평생 납입금의 최고한도가 100만 달러로 제한되는지 등을 따져야 하는데 금융상품이 날로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이다.
국내의 외국계 은행들은 커스터디업무(Custody Business)와 관련 로컬 은행의 FATCA 실사 의무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커스터디업무는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매입할 경우 자금 및 주식실물을 관리해주면서 외화를 원화로 환전하거나 주식의 매입·매도를 대행해주는 업무인데 HSBC, 한국씨티, 한국SC, 도이치뱅크 등 4대 외국계은행이 주로 하고 있다.
이들 은행에 실사의무를 지울 경우 글로벌 관리인과 실사의무가 중복될 수도 있으며, 업무의 복잡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계 은행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해결방안이 마땅치 않은 점이 문제다.
거래의 복잡성으로 인해 실사의무자가 애매해 지는 부분도 실무적인 난관이다.
예를 들어 은행의 신탁형(계약형) 펀드의 경우 FATCA의 실사의무를 수탁금융기관이 해야 하는지 집합투자업자(자산운영사)에서 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고, 방카슈랑스도 창구에서 신고고객을 받은 은행과 보험사 중에 실사의무를 누가 져야 하는지 애매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은행, 보험, 증권사 등에서 FATCA 관련 컨설팅 요구가 부쩍 늘어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애로사항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이어진 토론에서 국세청 납세자보호관을 지낸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내 FIU법은 국세청이 납세자의 정보를 받아 활용하는데 제약을 받는데 한미간 협약에 따라 한미 국세청이 해외계좌 정보를 제한 없이 받는 것에 대해 법적 충돌은 없냐"고 물었다.
이에 김 회계사는 "국가간 조세협정을 통해 정보를 자동교환하게 되는데 법적인 충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와 미국 등의 움직임을 보면 다자간 협정을 맺어 해외에서의 자금세탁 등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상당한 것 같다"고 전했다.
안경봉 국민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과세체계는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나누고 있고, 미국은 광범위하게 미국인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는데 이에 따른 혼돈이 발생할 소지가 없냐"고 질의했다.
김 회계사는 이와 관련 "우리나라와 미국의 과세 개념이 다르기는 하지만 미국은 국내원천 과세를 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며 "다만 실질 귀속에 대해서 국내 법과 FATCA의 의미가 다르고 애매하며 국내 법원 판결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윤 한양대 교수는 미국 영주권을 가졌지만 세금을 내는 곳이 다른 나라에 속할 경우 이를 어떻게 식별해 보고를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에 김 회계사는 "금융기관들이 매우 궁금해 하는 사항이다"며 "K은행이 신고를 했는데 S은행은 못할 수도 있는 문제가 생기는데 금융기관이 데이터를 비교하고 질문 등을 통해 확인절차를 충분히 거쳐 영주권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보고를 못했다면 패널티는 부과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