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는 외국계 자산운용사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기 전 계열 대행사를 이용해 인력을 채용하려 했지만 계열사에 업무를 위탁하려면 당국에 사전 보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B사는 외국계 보험사이다. 새 상품을 출시하면서 경영 상황과 시장이자율을 고려해 보험 요율을 인상, 검증을 의뢰했다. 그러나 요율 인상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증이 통과되지 않았다. B사는 신상품 출시를 포기하거나 손해를 감수하면서 보험 요율을 낮출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금융사들이 한국 정부의 규제를 과도하게 받고 있다. 외국계 금융사들은 규제 탓에 영업상 타격을 입는다는 불만을 제기하거나 때로 국가 간 갈등을 조장할 만한 소지도 생겨 그동안 논란이 돼 왔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 금융사와 외국계 금융사 간 규제를 차별할 수 없고, 국내 금융사들의 견제도 심해 규제를 완화하기가 쉽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7일 외국계 금융사의 금융 규제 사례를 발표하고, 선진국과 비교해 과도한 규제가 '금융 허브'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공시 의무 및 동일 자료의 중복 보고에 대한 부담, 실무자 변경에 따른 상품 인허가 장애 등 외국계 금융사가 한국에서 느끼는 금융 규제가 심하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새 정부는 경제 전반의 규제 완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금융 분야 현장에서 직접 제보를 받고 이달 중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2000년대 이후 규제 완화 정책이 꾸준히 시행돼 왔지만, 지난 10년 안팎의 성과는 매우 미흡했다는 것이 전경련의 분석이다.
최근 전경련이 국내 진출 외국계 금융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금융 산업의 최대 문제점은 '과도한 규제 및 정부의 개입'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64.2%에 달했다. 한국 금융 산업이 선진국 수준이 되기 위한 최대 과제는 '시장 진입 장벽, 취급 상품 제한 등 규제 완화'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71.8%이다.
전경련은 한국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시장가격을 왜곡시키고 불필요한 비용을 소모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홍성일 금융조세팀장은 "일부 금융사의 경우 300개 이상의 공시 의무를 지는데 이러한 규제는 금융 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의미 있는 정보를 가려내기가 어려운 정도다"고 지적했다.
또 "금융 당국이 법령 해석이나 유권해석을 서면 아닌 구두로 하는 경우가 많아 동일한 사항에 대해서 담당자에 따라 허가되거나 불허되는 사례가 있다. 이는 한국에서 금융업을 하는 데 있어 일관성 및 예측 가능성 측면의 어려움이 많게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 당국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외국계 금융사의 규제를 차별적으로 해소해 주는 것에 대해서 부담이 크다는 문제가 생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사들이 진출할수록 국내 금융사들의 견제가 심해지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 외교를 위해 미얀마를 방문한 후 "정책금융과 상업은행의 로비가 굉장히 심하다. 외국계 은행 (인가)해 주지 말라고 한다"고 전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