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등에 떨어진 커다란 불을 끄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소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기(失期) 했다고 할 수 없는 타이밍. 정책의 강도를 높여 허비한 시간이 남겨놓은 공간을 채운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사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이 전개될 지 여부를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 대한민국 그 누가 '세월호'가 침몰할 줄도 몰랐고, 사고의 여파가 경제회복의 불씨를 비벼 끌 정도로 커질 줄 예측했겠는가. 어쨌든 물은 엎질러졌고, 어렵지만 쏟아진 물을 담는 일은 정부가 떠안은 상황이다.
24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전반에 걸쳐 대한민국의 위급한 경제상황과 반전을 노리는 정부의 다급한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 스스로도 인정했듯, 여기서 삐끗하면 한국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의 효과가 시장에 먹히기를 바랄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 "제발, 돈 좀 써달라" =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담긴 정부의 정책기조는 전체적으로 돈을 쓰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름대로 '특효약'이 될 대책을 고안해 내놓았다.
이웃나라 일본이 2011년 도입한 '소득확대 촉진세제'와 유사한 형태의 가계소득지원세제를 도입, 가계소득 증대를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늘어난 소득을 가계들이 시장에서 소비하게끔 만든다는 복안이다.
정부가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해 재정에서 지원하기는 불가능한 일.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소속 근로자들의 월급을 올려주도록 법인세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것이 가계소득지원세제의 골자다. 이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내유보금 과세 문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
정부는 대기업들에 한정해 사내유보금 과세제도 도입을(기업소득환류세제) 검토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일정기간 동안 이익금을 투자 또는 배당, 임금인상에 사용하지 않을 경우 쓰지않고 쌓아둔 이익금에 법인세를 물린다는 방침이다.
투자 또는 배당, 임금인상에 적극적일 경우 법인세 인센티브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며 이익금을 임금인상에 사용할 경우 주는 인센티브가 곧 가계소득지원세제로 연결되는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야심찬 계획이라 여길 수 있지만 기업들이 어느 정도까지 따라줄 지 여부는 미지수.
게다가 입법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입시기가 지금 당장도 아니다. 또한 근로자들이 월급을 올려 받는다 해도 얼마나 소비를 확대할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실패를 운운할 수는 없지만 정책의 실효성이 너무도 불확실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만 되면 폐지를 운운했던 태도를 버리고 정부 스스로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을 연장(2년)하기로 한 것도 정부가 현재의 경제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 정책효과가 소진됐다는 둥, 틈만 나면 제도를 폐지해 세수증대를 노렸던 정부가 적어도 2년 동안은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현금영수증 및 체크카드 소득공제폭을 한시적으로(올해 7월~내년 6월) 상향조정(30%→40%), 소비에 대한 유혹을 키운다는 계획이지만, 이들 정책의 효과 또한 크게 형성될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 말대로 가계소득도 늘지 않는 상황에서 무슨 쓸 돈이 있다고 세금혜택 몇 푼 받기 위해 돈을 쓸리는 없다고 보는 것이 정답에 가깝기 때문이다.
극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뚝심있게 LTV(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를 조정해 부동산 시장을 살리겠다는 방안도 마찬가지.
가계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민 중산층의 경우 대출여력이 높아져도 순전히 대출만으로 집을 살 수도 없고, 늘어난 대출금 만큼의 이자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계층, 금싸라기 지역(서울 강남 등)에 집을 가지고 있는 이들만 좋은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현실화된다면, 부동산 시장 활성화 성과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사회적 갈등의 심화라는 부작용이 생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경제심리' 깨우는 정책이 없다(?)" = 경제활성화를 목표하고 있는 정부의 다급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전반적으로 책상에 앉아 만들어낸 정책들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언급하고 있고 정부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듯,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무엇인가 반전의 기틀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정책(특히 조세정책)들이 지금 당장 효과를 내기 불가능한 것들이다.
가계소득지원세제가 그렇고, 굳이 넣자면 기업소득환류세제(사내유보금 과세)가 그렇다.
국회에서 입법논의가 원활하게 진행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하반기 재정을 더 풀어 경제활성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성있는 유일한 방안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정부가 경제활성화의 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도 LTV, DTI 규제완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부동산 시장에서는 사실상 무산된 것이나 다름 없는 '전월세 대책'에 대한 잠재적 불안감이 씻기지 않은 이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을 정도다.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입만 열면 시장과 소통하겠다는 정부가 시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정책을 고안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마련하면서 참고했다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대상 전문가들의 80% 가까이가 세월호 여파가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이 중 60% 이상이 민간소비 분위기 조성을 경제정책의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를 곱씹어보면 잔뜩 움츠러들어있는 시장의 경제심리를 깨우기 위한 정책들이 필요하다는 뜻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경제심리 회복을 위한 대책들은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자료에서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내용 여부를 모두 떠나 재계 및 다수의 조세전문가들이 비판을 가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코 사내유보금에 대한 패널티성 과세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을 보면, 오히려 경제심리 회복을 방해하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