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비리 바로잡는 '최선의 선택' 돼야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는 관리비는 '먼저 챙기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눈 먼 돈'이다.
입주자 대표가 관리비를 제 돈인 양 물 쓰듯 쓰고, 부녀회가 바자회 등으로 벌어들인 잡수익을 제 주머니 채우는데 급급했다. 또 관리업체는 관리비 횡령은 물론 용역업체를 선정하며 뒷돈을 챙기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아파트 비리가 끊이지 않고 반복되자 정부는 주택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3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이 외부회계감사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관리비 규모만 연간 12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아파트 외부감사는 방만한 관리를 바로잡는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외부감사인들이 기업의 분식회계를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파트 외부감사 역시 부실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오히려 외부감사가 아파트 비리를 합리화하는데 악용돼 왔다는 주장마저 제기된다.
지난 8일 조세일보와 재무인포럼 주최로 열린 '공동주택 회계관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송주열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 대표는 "많은 아파트가 회계감사를 실시하지만 회계 사고를 적발해 입주민의 피해를 회복시킨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원일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사무총장은 "외부감사가 관리주체에 면제부를 주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의 품질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워낙 아파트 회계감사에 대한 보수가 박하다 보니 최소한의 감사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 어렵고, 중간에 브로커가 개입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결국 공인회계사는 도장만 빌려주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감사인과 피감사인의 유착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입주자 대표나 관리업체와 연고, 친분이 있는 감사인을 선임해 회계감사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아파트 회계감사의 현실이 이렇다보니 외부감사 의무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외부감사는 입주자 대표와 관리업체를 견제하고 방만한 회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부동산이 중요한 재산이 된 현재의 상황에서 관리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길'과 다름 없다.
다만 아파트 외부감사에 대한 인식의 전환부터 제도 보완 등 쌓여 있는 선결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파트 외부감사는 불필요한 비용을 관리비에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관리비 부과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각종 비리를 예방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제라는 시각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
또 감사인 선임에 있어 유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추천을 의무화하는 등 공영제를 도입하고, 비리를 반복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 높은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와 더불어 입주민들 스스로 아파트 운영과 관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내가 내는 관리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의 눈초리를 세워야 할 것이다.
관리비의 투명성을 높이고 아파트 비리를 근절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외부회계감사가 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들의 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