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과 국민은행이 4년여 동안 끌어온 4121억원 규모의 소송전이 끝났다.
패자는 국세청. 승자는 국민은행이다.
패자인 국세청은 거액의 세금환급액에 더해 결코 적지 않은 소송비용까지 모조리 떠안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국세청이 패소로 국민은행에 돌려줄 돈은 소송 전후로 되돌려 준 세액과 대법원 최종 판결로 환급해야 할 세액, 여기에 환불이자 개념의 국세환급가산금까지 합쳐 애초 국민은행에 추징한 세액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뜩이나 세수가 부족한 마당에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악재'를 제대로 만난 셈이다.
단순히 돈을 돌려주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대형 금융사들과 벌인 세금전쟁에서 국세청이 번번이 패배하고 있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 대목이다. 국세청은 부인하고 싶겠지만, 안팎에서는 이를 '부실과세의 전형'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국민은행과의 소송전도 큰 틀에서 부실과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금융사 앞에만 서면...작아지는 국세청 = 국세청이 금융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수 천, 수 백억원을 부과해 놓은 뒤 추후 진행되는 소송 등의 과정에서 패배한 사례는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국민은행 조세소송과 유사한 사례가 앞서 존재했다.
국세청은 지난 2009년 외환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면서 외환은행이 지난 2004년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쌓은 대손충당금 문제를 짚어내 2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했지만, 불복절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외환은행에 세금을 되돌려 줬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세무조사 결과 추징됐던 135억원 가량의 세금을 소송전을 통해 돌려받았다. 특히 이 소송전은 국세청이 1심에서 패소하자 국세청이 135억원의 세액을 돌려주면서 하나은행측이 소송을 취하, 끝난 사례다.
소송으로 가기 전 국세청 스스로 입장을 뒤바꾼 사례도 있다.
앞서 2008년 3월 하나은행에 1조7000억원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액수의 세금을 두들겼다. 당시 국세청은 '역합병(적자법인이 흑자법인을 인수하는 형태의 합병)'을 문제삼았다.
황당한 것은 불과 3개월 뒤 과세통지를 국세청 스스로 무효화(과세전적부심)하고 1조7000억원 세금추징을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 만약 과세전적부심 단계를 뛰어넘어 실제 과세가 이루어졌다면 역대 최대규모의 조세소송으로 비화됐을 문제다.
지난 2013년 신한은행이 신한금융지주에 지불한 브랜드 사용료를 트집 잡아 1200억원을 과세했다가 또 다시 과세전적부심 단계에서 과세 취소를 결정했다.
국세청 입장에서 자체 시정기능을 통해 부실과세를 원천차단했다는 식의 홍보가 가능한 대목이지만, 애초 세무조사 담당부서에서 '하자 투성이' 과세권 행사를 시도했다는 점은 덮기 어려운 부분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국민은행의 조세소송 승리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국세청이 급변하는 기업들의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한 채 구시대적 시각에 얽매여 무리한 과세권을 행사하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국민카드 인사합병과 관련해 대손충당금을 쌓은 방법은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고급 방식"이라며 "이번 조세소송 승소가 금융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세무당국으로서 국세청의 권위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회사 관계자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정부가 세수 확대를 강조하면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강도 높다, 추징액이 과도하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국민은행의 조세소송 승소로 국세청의 무리한 과세 시도가 조금이나마 근절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