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글로벌 경기 회복 부진에다 엔화와 유로화 약세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일본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 실적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일본에 대한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7%, 유럽 지역 수출은 18.8%나 줄었다. 월별 전체 수출증가율은 1월 -0.9%, 2월 -3.3%, 3월 -4.3%, 4월 -8.1%로 갈수록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5월에도 감소세는 계속 이어져 작년 같은 달보다 10.9%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무역수지는 63억2천만 달러로 2012년 2월 이후 40개월째 흑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지만 수출증가보다 수입이 더 줄어 흑자가 나는 ‘불황형 흑자’다.
우리의 경제성장에서 수출이 기여하는 비율은 여전히 45.5%에 이르지만 수출은 지난해 3분기 이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되레 끌어내리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올 초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 등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날 시기인데도 수출에 발목이 잡혀 전체적인 경기회복은 더뎌지는 상황이다.
소비가 회복세를 보였지만 수출부진으로 산업생산은 줄었다. 저유가 덕분에 소폭이나마 고개를 들었던 기업 체감경기도 4개월 만에 다시 꺾였다. 내수기업 중에도 수출기업에 부품과 소재를 납품하는 기업들이 많아 수출부진의 영향은 설상가상이다.
우리 수출은 2011년까지만 해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경제성장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2012년 이후부터 정체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다, 유럽 일본 등이 통화 약세를 통해 성장하는 등 대외환경 악화 탓도 물론 크다. 하지만 근본원인은 우리의 수출경쟁력이 구조적 한계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전체 수출의 4분의 1이 중국에 대한 중간재·자본재 수출이다. 중국 기업들은 한국산 부품·소재를 들여와서 만든 제품을 제3국으로 수출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3% 안팎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국이 성장전략을 수출에서 내수 위주로 바꾸고, 수입해서 쓰던 부품·소재를 자국 제품으로 서둘러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중간재의 중국 수출 길이 원천적으로 막히고 있다.
우리의 주력 수출품들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새로운 수출산업은 보이지 않고, 기술과 품질보다는 여전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구조다. 후발공업국들이 선진국들과 기술제휴로 세계 제조업 시장에 뛰어들어 표준화된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기업들의 경우 우리가 갖고 있는 기계 설비보다 더 좋고 최신의 것을 수입해 낮은 인건비로 같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들면서 우리 제품들이 설 땅을 잃게 된 것이다.
주요 경제권과의 지속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경제영토’ 넓히기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침체로 돌아선 것은 ‘내다 팔 것이 점차 없어져가는’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있긴 하지만 완성차의 해외 생산비중은 50%, 휴대전화는 80%가 넘는다. 일본은 90년대 초반 가전과 기계·운수장비 등 주력 수출제품의 경쟁력이 한국 등 후발국에 하나 둘씩 따라잡히면서 ‘잃어버린 20년’의 시발점이 됐었다.
수출산업의 위기는 수출산업에서 끝나지 않고 연관효과를 통해 다른 산업의 위기로 전이된다. 그 결과로 실업률은 높아지고 가계소득 감소와 내수침체로 되돌아온다.
이 때문에 경기가 지난 1분기말에 단기 정점을 찍고 본격적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암울한 분석까지 나돌고 있다. 급기야 정부 일각에서 추가 금리인하 필요성이 거론되는 분위기다. 엔화약세에 대응하기위해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지만 금리인하로 수출가격경쟁력 회복을 노리는 것은 그야말로 단기 미봉책에 불과하다.
되레 미국 금리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가계부채 폭발 우려가 커지면서 서민경제와 금융시장만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경기회복세 미약이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은 국회 탓으로 매번 돌리고 있다. 수출이 안 되고, 빚내서 소비하는 것도 한계에 부닥쳤다면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 중국 제조업이 거대한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한 후 우리의 노동과 고용시장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제조업 또는 수출기업에 의한 고용의 성장은 한계에 봉착했고 앞으로도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은 아직도 재정확충이나 금리인하 같은 부채주도 성장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효과도 막연한 부채주도 성장에만 매달리는 경제팀의 모습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한국 수출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에 명운을 걸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에 모든 정책의 방점이 찍히면서 시간이 걸리는 생태계 조성이나 체질개선보다는 당장의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다.
정부가 선두에서 밀어붙이고 대기업이 울며겨자먹기로 창조센터를 만들어 따라가는 모양새는 개발연대에나 가능한 낡은 모델이다. 대기업들은 유망벤처의 발굴이나 육성에 익숙하지 않고 쓸 만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으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벤처기업을 하청구조로 종속시키는 데 이력이 나 있다.
과거의 제조업은 대규모 기업의 수직계열화가 경쟁력의 요체였지만 미래의 제조업은 수많은 중소기업 간의 개방 협력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창조경제가 본질을 외면하고 정치성 짙은 이벤트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이래서 나온다.
창의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산업의 창출과 기존산업의 창조산업화를 통한 질적 도약이 창조경제의 본질이다. 수많은 ‘히든 챔피언’들이 수출을 주도하는 산업구조와 기업생태계를 조성하고 후발국들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핵심 역량을 개발해 차별화된 수출경쟁력을 갖춰나가는 수출산업의 구조개혁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과 유라시아대륙으로 수출 및 경제협력의 새 지평을 열어젖혀야 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호황 기조를 누렸던 한국 수출이 글로벌 시장의 산업 재편 와중에서 장기적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세계의 공장’ 중국 옆에서 한국이 뭘,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에 관한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업보다. 수출로 먹고산다는 ‘FTA 선진국’ 한국이 ‘수출 2류 국가’로 전락해서야 이게 어디 될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