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인상 문제를 둘러싸고 끝없는 대립을 이어왔던 여야가 추가경정예산안 합의 과정에서 '소득세·법인세 정비'에 뜻을 함께하면서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인세 인상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지난 23일 추경예산안 논의 과정에서 세입기반 확대를 전제로 한 법인세 인상론을 들고나온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기존 입장을 번복, 소득세와 법인세 정비 문구를 부대의견으로 명시하도록 한발 물러섰다.
야이 법인세 인상론을 또 다시 들고 나온데는 정부가 편성한 추경 예산안 중 세입결손 보전을 위한 세입경정예산 때문이다. 야당은 전체 추경 예산안 11조8000억원 중 5조6000억원이 세입경정예산으로 책정된 것이 과도하다며 세수결손 보전의 대안으로 법인세 인상을 주장했다.
여당은 법인세 인상 주장에 난색을 표했지만 추경 예산안 통과 데드라인(24일)이 바짝 다가오면서 결국 부대의견 삽입을 받아들였다. 결국 이 것이 '불씨'가 될 전망이다.
야당은 이 부대의견을 '법인세 인상을 포함한 논의'라고 해석하는 반면 여당은 '법인세 인상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어 연말 열릴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증세 문제를 두고 '대충돌'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부터 야당 대표(문재인)가 "법인세 정비(합의를) 파기하면 여야 관계는 회복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엄포를 단단히 놓았다.
□ 성역(聖域)이 된 '법인세 인상' = 야당의 법인세 인상 주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정도로 수년 째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경기활성화와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유로 법인세를 건드릴 수 없는 '성역(聖域)'으로 남겨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08년 법인세율이 25%에서 22%로 인하된 것에 대해 야당은 이를 '대기업·부자감세'라고 지칭하며 법인세 인상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현재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 구간은 10%, 2억~200억원 이하 구간은 20%, 200억원 초과 구간은 22%이다. 야당은 여기에 5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25%의 세율을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이 법인세 인상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이유는 복지 재원 마련과 더불어 2012년부터 3년 연속 발생한 세수결손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당이 '증세'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안으로 내놨던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카드가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인 현재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야당의 주장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 '법인세 인상=세수펑크 막는다(?)' = 여당과 야당이 법인세 인상을 놓고 오랜 대립을 이어가는 이유는 그 '효과'를 전망하는 부분에서 의견이 완전히 엇갈리기 때문이다.
여당은 세계 각국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법인세를 인상한다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 오히려 세수가 감소하고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야당은 이명박 정부 당시 법인세 인하로 세수가 크게 감소했으며 이 혜택은 대기업과 부자들에게만 돌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당시 민주당(現 새정치민주연합)은 MB정부의 법인세 인하 정책을 철회하기만 하면 90조원의 세수가 확보될 것이라 주장했다.
여야의 의견이 180도 다른 상황에서 실제 법인세수는 그동안 어떻게 변화했을까.
법인세를 인하했던 2008년 법인세수 실적은 39조2000억원이었으며 2009년 35조3000억원으로 감소했다가 2011년 44조9000억원으로 40조원을 돌파했다.
2조8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했던 2012년 법인세수는 45조9000억원이었으며 8조5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했던 2013년 법인세수는 43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조원 감소했다.
사상 최대인 10조9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했던 지난해 법인세수 실적은 42조7000억원으로 2012년부터 3년 연속 법인세수 실적은 하락하고 있었다.
세수감소분을 정부가 당초 계획했던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보전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조세지출 규모가 33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33조원으로 감소하는 등 정부가 의지를 보였지만 올해는 오히려 33조1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세지출 항목 중 가장 규모가 큰 연구개발(R&D) 비용세액공제는 대기업에 대한 공제한도를 두 번에 걸쳐 축소했음에도 2013년 2조8850억원이던 지출규모가 2015년 3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던 정부의 계획이 공허한 외침이 되어버린 셈이다.
□ 반드시 법인세…Why? = 법인세수 실적이 매년 곤두박질 치는 사이 소득세수와 부가가치세수는 2012년부터 매년 상승하고 있었다. 2012년 소득세수는 45조8000억원으로 법인세수보다 적었지만 2013년 47조8000억원, 2014년 53조3000억원으로 법인세수를 추월했다.
부가세수 실적은 2012년 55조7000억원에서 2013년 56조원,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가 침체됐던 지난해에도 57조1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법인세수는 세계 경제의 영향과 국내 경기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세수로서 소득세수에 비해 안정성이 낮은 편이지만 소득세수는 매년 근로자 임금 상승과 취업자 수 증가 등으로 타 세목에 비해 경기의 영향을 덜 받는다.
전문가들이 정부가 재정운용방향을 설정하거나 예산안을 편성할 때 경기여건 변화와 각 세목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하지만 여야는 '법인세'만 놓고 끝이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만 계속 하고 있는 등 소모적인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정치적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여야의 입장과도 무관치 않다.
우리나라 국민이 대부분이 연관되어 있는 소득세수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총선이나 대선 때 '표'가 날아갈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의 크기가 가시적으로 잡히지 않는 법인세수는 표를 깎아먹을 위험성이 적은 편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에 논란이 됐었던 연말정산 보완대책이었다. 연말정산 보완대책으로 근로자 면세비율은 2013년 32.4%였지만 2014년 48.2%까지 증가했다.
이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는 정부에 면세자 비율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오라고 요구, 기획재정부가 대안을 가져왔지만 서민들의 세부담이 증가한다는 이유로 결국 논의 테이블에도 올리지 못했다.
이에 따라 연말 정기국회에서도 법인세 인상 여부만을 놓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할 공산이 크지만 여야가 소득세수의 이 같은 문제점을 감안해 이번 추경 예산안 부대의견으로 법인세와 소득세를 같이 논의하자고 한 점이 그나마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전문가들은 법인세 인상 논의도 결국 세수확보를 위한 것인만큼 국회가 생산적인 논의를 하기 위해선 법인세 뿐만 아니라 다른 세목까지도 폭넓게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는 "법인세 뿐만 아니라 소득세도 가능한 늘려야 한다. 세수가 부족하다면 법인세나 소득세나 늘려야 한다"며 "그것도 부족하면 소비세에서도 비과세·감면 정비를 하든 세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증세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수가 중요한 화두이기는 하지만, 법인세율을 끌어 올렸다가는 가뜩이나 침체된 경기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세부담이 높아질 수록 기업들의 투자주머니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권 차원에서 기업들의 투자를 압박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얼떨결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버린 여야가 연말 정기국회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지, 귀추가 주목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