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대회의 메이저 중 메이저인 제144회 디오픈(The Open)이 잭 존슨의 우승으로 끝을 맺었다. 40년 동안 디오픈에 빠짐없이 출전했고 5차례나 우승컵 클라레 저그를 품었던 골프의 레젼드 미국의 톰 왓슨도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디오픈을 떠났다.
골프의 성지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18번홀 스윌컨 다리 위에서 작별을 고하면서도 그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디오픈에서 굉장한 추억을 만들었다”며 행복해 했다.
2009년 스코틀랜드 텐버리골프장에서 열린 제138회 디오픈. 이 때 왓슨은 전세계 골프팬들의 가슴을 적셨다. 환갑의 나이였음에도 그는 최종라운드 17번홀까지 1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18번홀에서 2미터 거리의 파만 잡으면 최고령 메이저 우승기록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퍼터를 떠난 공은 야속하게도 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약관(?) 36세의 스튜어드 씽크와 동타가 된 것.
4홀 스트로크방식의 연장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는 톰 왓슨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 나흘간 72홀이나 돌았으니 체력이 바닥날 수 밖에 없었을 터. 휘청거리는 그의 다리가 화면에 잡혔다. 연장 첫 홀 보기. 세 번째 홀, 긴 러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더블 보기. 결국 고배를 들었다.
연장전이 끝난 후 톰 왓슨는 온화한 모습으로 스튜어드 씽크에게 다가가 “자네 정말 위대한 것을 이루었다네”라며 포옹했다. 그리고는 그의 패배에 울먹거리는 기자들에게 “내 장례식도 아닌데 왜 이러냐”며 이들의 상한 마음도 어루만졌다.
이 경기에서 스튜어드 씽크가 비신사적 행동을 했거나 잘못한 것은 사실 하나도 없었다. 그 역시 정정당당하게 승부에 임해 부끄럽지 않은 우승을 거두었다. 그런데도 씽크는 조연에 불과했다.
팬들은 심지어 그를 ‘악동’ 또는 ‘훼방꾼’으로 힐난했다. 디오픈에서 정정당당하게 우승하고서도 씽크처럼 그렇게 많은 욕을 얻어먹은 사람도 없었다. 노장의 투혼과 노신사의 온유한 풍모에 감동한 전세계 골프팬들이 왓슨의 우승을 그토록 갈망했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톰 왓슨의 별명은 허클베리 딜린저였다. 익살스럽고 틈이 약간 벌어진 앞니와 주근깨가 박힌 그의 얼굴이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허클베리 핀을 닮았다 하여 허클베리로 불렸다.
딜린저는 1930년대 치밀한 계획 하에 두 차례 탈옥에 성공했고 수 차례 은행을 턴 강도다. 승부처마다 냉정하고 치밀한 전략 하에 코스를 공략하는 왓슨의 승부사적 모습이 마치 딜린저와 같다 하여 허클베리 뒤에 딜린저가 따라 붙은 것.
그리하여 그는 PGA투어에서 39승을 거두었다. 그 중 메이저 우승이 8회나 된다. 1977년 디오픈에서는 4라운드 내내 또 다른 레젼드 잭 니클라우스와 접전하면서 우승했다. 얼마나 치열했으면 팬들이 이를 ‘백주의 결투’라 했을까.
그러나 왓슨의 인기 원천은 골퍼로서의 그의 업적이나 세기(細技)에 있었던게 아니다. 오히려 나이 들면서 점점 원숙해진 인간성과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 그리고 동네 할아버지 같은 푸근함, 바로 거기에 있다. 한 타 한 타마다 납덩이가 짓누르는 듯한 극한적 압박감 속에서도 온화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톰 왓슨은 내년 4월 오거스타에서 열릴 대회를 끝으로 마스터스와도 작별한다. 시니어투어에서는 계속 뛸 것이나 디오픈과 마스터스에서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보기는 어렵다. 그를 보면서 행복했었는데 많이 섭섭하다. 우리 주변에도 톰 왓슨처럼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미소와 유머를 잃지 않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