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재산 수억 원에서 수백억 원을, 심지어 재산 전부를 자선단체나 장학기금으로 쾌척했다는 뉴스를 이따금씩 접한다. 그럴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인간적 고뇌도 매우 컸을 것이라는 느낌도 들곤 한다.
평생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모은 돈이 어찌 아깝지 않았으랴. 가족들 눈치도 봐야 했을 것이고 설득에 애를 먹었을 수도 있다. 기부는 이처럼 어려운 결정이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다. 어려운 기부에 관해 우리 세법의 입장은 어떤가. 그리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필자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렇다.
법인세법은 법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정상가액(시가의 70~130%)의 범위를 벗어나는 금액으로 비(非)특수관계자와 자산을 매매하면 그 부분을 ‘비지정기부금’으로 본다. 지정기부금이 아니니 한 푼도 손금 산입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거래를 기부로 명명하고 세법으로 옭아매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정상가액 밖의 금액에 자산을 팔거나 샀다면 필시 사업상 이유가 있었을 터. 그게 아니라면 멍청한 짓이다. 세법에서는 기부 행위를 그러한 멍청한 행위로 보고 있는 듯하다. 기부를 바라보는 세법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세법의 이런 입장은 기부금공제제도에서도 엿보인다. 2013년 이전에는 개인납세자가 지출한 공익성기부금을 소득금액에서 공제했다. 똑같이 백만원을 기부해도 최저세율 6%가 적용된 기부자의 세금공제액은 6만원인데 비해 최고세율 38%가 적용된 기부자의 공제액은 38만원이다.
이를 두고 누군가가 고소득층에 대한 특혜로 몰았다. 2014년부터 지출기부금의 15%를 세금에서 빼주는 세액공제로 대체됐다. 그 결과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 모두 15만원을 소득세에서 공제받게 됐다.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저소득층은 9만원만큼 공제를 더 받고 고소득층은 23만원 덜 받게 된 것이다.
얼핏보면 공평한 것 같다. 과연 공평한 조치인가?
이러한 세법 개정으로 고소득층의 경우 국가에 세금을 낼때는 초과누진세율을 적용해 높은 세금을 내도록 하면서도 국가에서 깎아주는 몫에는 낮은 세율을 적용해 앞뒤가 맞지 않는 ‘놀부심보’가 작용하게 되어 버렸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기부는 국가가 부담해야 할 몫을 대신 부담해주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기부에 정부는 놀부심보를 부리는 셈이다. 놀부곳간에서 인심날까? 자칫 공익성기부금을 지출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큰 고소득층이 기부행위에 등을 돌릴까 두렵다.
기부의 백미(白眉)는 평생 동안 일궈놓은 기업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환원은 공익법인에 주식출연(出捐)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세법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공익법인에의 주식출연 한도를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한도는 해당 법인이 발행한 의결권주식 총수의 5%(일정 요건을 갖춘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10%)이다. 대주주가 이 한도를 넘어 출연하려면 증여세를 내야한다. 이것이 싫으면 주식을 팔아 양도세를 물고 난 뒤에 현금을 출연해야 한다. 어느 경우든 세금만큼 기부금액이 줄기 마련이다.
주식을 출연하면 곧바로 공익법인의 것이 되고, 그것의 처분과 관리는 공익법인관계법에 따라 엄격히 통제된다. 출연자나 특수관계인이 공익법인 운영에 관여하는 것도 엄격히 규제된다. 공익법인이 해산하면 잔여재산은 국고에 귀속된다. 정부는 그걸 알면서도 좋은 일 하겠다고 주식을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행위를 왜 제한하는 것일까.
대주주가 공익법인을 통해 경영권을 행사할 것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과거 그런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대주주의 초과출연을 규제함은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업의 역사가 오래돼 2, 3세로 넘어가면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은 약해지고 출연자의 출연이념이나 경영이념만 남게 된다. 공익법인은 원래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재원부족으로 직접 하기 어려운 공익사업을 담당하는 사회적 공기(公器)가 아닌가.
그런 경우를 우리는 록펠러∙카네기∙럿셀 세이지 및 포드재단에서 본다. 미국인들도 처음에는 이들 재단을 세금회피수단으로 비난했지만 지금은 미국사회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누구도 이 재단을 설립자 가문의 사유(私有)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2세, 3세가 아니라 곧바로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승계시키기 위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려는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 주식의 출연 한도는 미국처럼 20% 정도로 올리되(일본은 50%), 공익법인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할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출연한도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걱정된다면, 초과출연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등 대안도 많다.
기부는 그 수단이 현금이든 주식이든 숭고한 선행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일에 쓰라고 재산을 쾌척하는 분들을 ‘기부천사’라 부른다. ‘기부’에 하늘이 할 일을 대신하는 분이라는 뜻의 ‘천사’가 붙었음은 기부가 천명(天命)을 받드는 행위임을 강조코자 함이다. 기부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역설적으로 웅변하는 대목이다. 그런 기부천사의 날개를 세법이라는 이름으로 꺾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