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인출조건도 까다로워…재형저축 실패 '판박이'
정부가 서민들의 금융자산 형성을 돕기위해 내년초 도입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시행도 되기 전에 실효성 논란에 빠졌다.
ISA는 한 계좌에 예·적금과 펀드, ELS 등 파생결합증권을 자유롭게 담을 수 있는데다 비과세 혜택이 있어 '만능통장'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비과세혜택이 크지 않은데다 가입조건과 인출조건이 까다로워 허울뿐인 만능통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제도를 시행 중인 영국 캐나다 일본에 비해 제한이 많다는 것이다.
정부가 서민 재산형성을 돕기 위해 야심차게 출시한 재형저축이 7년에 달하는 의무가입기간과 미미한 비과세 혜택 때문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듯이 ISA도 같은 이유로 실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ISA가 도입되더라도 비과세혜택이 기대에 크게 못미쳐 서민들의 재산형성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ISA는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인 경우 250만원, 5000만원 이상은 200만원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부여되는데 그치고 있다. 초과분에 대해서는 9.9% 분리과세 하도록 했다.
9.9% 분리과세 혜택은 상당한 고소득층에게는 매력적이나 서민들에게는 메리트가 떨어지는 혜택이라는 것이 세무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같은 세제혜택을 누리기 위해 계좌를 유지해야 하는 기간도 길어 가입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5년간 의무적으로 계좌를 유지하도록 했다.
연소득 5000만원이하인 가입자나 청년들은 결혼과 주거 등을 위해 자금 수요가 생길 경우 의무가입기간을 3년으로 줄여주고 있으나 이 역시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저소득층 등 자금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계층은 유동성 제약 때문에 ISA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ISA가 오히려 자금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에 유리한 제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나마 가입자격을 근로소득자와 개인사업자, 농·어민 등으로 제한하고 있어 광범위한 가입자층을 확보하는데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 소득증빙이 어려운 프리랜서나 주부들은 가입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8월 열린 '한국형 ISA 성공과제 토론회'에서 "정부가 내놓은 세제혜택은 타 과세상품과 비교할 때 세제혜택이 크지 않아 호응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과세 혜택이 너무 작아 서민층 자산형성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며 "재형저축 사례와 같이 서민들에게 외면받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인출제한과 가입 제한이 있는 한정적 정책으로는 효과를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ISA가 활성화된 영국은 자금 인출에 특별한 제약이 없고 계좌를 유지하는 한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며 "우리 ISA제도는 5년간 돈을 묶어놔야 하고 중도 인출하면 비과세 혜택도 사라지는데 장기간 목돈을 묶어놔야 하는 구조여서 서민들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재형저축의 경우 2013년이후 7월말까지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의 누적 가입 계좌 수는 130만4621개 계좌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중 31.8%인 41만5372개 계좌가 해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형저축 가입자 10명 가운데 3명이 3년도 채우지 못하고 계좌를 해지한 것이다.
이처럼 재형저축이 흥행에 실패한 데는 7년의 의무가입기간과 금리 하락에 따른 이자소득 축소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가 하락하고 있는데다 상품을 가입하기 위해서는 소득증빙까지 해야하는 등 가입조건이 까다로워 저축확대와 자산형성이라는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과세 혜택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기준금리가 연 1.50%까지 떨어져 재형저축 금리도 크게 하락했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이자소득이 줄어드는 만큼 재형저축의 비과세 혜택도 덩달아 감소한 것이다. 또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7년간 가입을 유지해야 하는데 저소득층 등 유동성이 부족한 가구는 의무가입 기간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ISA의 문제점이 재형저축과 비슷해 ‘판박이’의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