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계룡산의 상서로운 기운은 여전
계룡산 하면 ‘도사’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직접 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신령스런 분위기를 주는 산이다. 과거 계룡산은 얼치기 도인으로 인해 사건, 사고가 많았던 곳이다. 왜 하필 선무당들이 계룡산을 들먹이는가? 그것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계룡산이 영산(靈山)으로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계룡산은 영적인 기운의 대표 산이다. 산줄기와 물줄기가 묘하게도 태극의 형상을 이루는 중심에 계룡산이 서 있다. 계룡산 전체를 휘감고 도는 영기의 정점에는 신도안(新道內)이 있다. 신도안에 이르면 계룡산 이름의 유래가 드러난다. 닭 벼슬을 쓴 용(鷄龍)의 형상.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머리 봉(혹은 부리 봉)은 닭 부리 모양에 다름 아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가 ‘금 닭이 알을 품었다(金鷄抱卵)’, ‘용이 날아올라 하늘로 솟구친다(飛龍昇天)’고 했던 모습 그대로다.
신도안이란 말 그대로 600여 년 전 태조 이성계가 일찌감치 조선의 수도로 점찍었던 곳이다. 그런데 10개월에 걸쳐 대궐 터까지 닦아놓은 상태에서 조선의 도읍이 갑작스레 한양으로 정해졌다. 무슨 사연이 숨어 있었는가.
나는 매월 음력 16일이면 계룡산이 있는 유성으로 내려간다. 국내외에서 찾아온 소중한 인연들과 좋은 얘기를 주고받는 모임이 유성의 후암선원에 마련되는 날이다. 그래서 이따금씩 계룡산에 들면 이성계 영혼 일행과 자주 맞닥뜨린다.
그런데 이성계는 왕이라 홀로 나타나는 법이 없고, 태조 영혼의 행차에는 정도전, 하륜, 그리고 무학대사 등 개국공신들과 국사(國師)가 동행한다.
“왜 계룡산을 포기하고 500리나 떨어진 한양으로 가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좌중을 둘러 본 태조가 털어놓는다.
“이 사람들(정도전, 하륜)이 신도안은 너무 남쪽이고 또 근처에 큰 강이 없어서 경세(經世)에 불리하고, 신도안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형국이라 천도지로는 흉하다기에…”
“그렇다면 사연봉(四連峰) 태조대왕 동굴은 무엇인가요.”
“궁을 짓는 동안 기도하던 곳이었지. 그런데 기도하다가 계룡산 할머니를 만났어. 할머니가 반대하니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네.”
이성계가 말하는 할머니는 계룡산 신령을 말한다. 계룡산 산신은 “계룡산의 임자는 당신이 아니라 다섯 가지 덕을 갖춘 신인(神人)이네”라며 이성계에게 공사 중단을 명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양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동시에 500년이라는 조선왕조 수명도 예고했다고 한다.
과거 일본은 계룡산 구석구석의 혈맥만 정확히 골라 쇠말뚝을 박았다. 그리고 충청남도의 도청소재지를 대전으로 옮겼고 부여에 자신들의 신궁을 만들었다. 서울 남산에 이미 신궁이 있었건만 수도가 아닌 지역에 제2의 신궁을 건설하는 파격을 저지르고 말았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었다. 계룡산의 상서로운 기운이 일제 패망을 재촉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계룡산은 상서로운 영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심기는 매우 불편하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주변 땅이 마구 할퀴고 있어 몸이 몹시 아프다고. 아물만하면 또 파고드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