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비밀은 자루 속 송곳처럼 솟아나기 마련
계룡산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영산(靈山)이다. 지금은 물론이고 오래전부터 나와 인연을 맺고 있다. 1970년대 초부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립대전현충원 건립지와 함께 은밀히 새로운 수도 이전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곳이 일찍이 명당으로 꼽혀왔던 신도안을 중심으로 한 계룡산 일대였다. 그 무렵 나는 영능력자로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조언을 청해왔고, 옛 사람이 쓴 글자를 감정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차츰 소문이 퍼져 신도안을 포함한 계룡산 일대의 바위에 새겨져있다는 서각자(書刻字)와 그곳이 과연 명당인지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게 됐다.
해독 부탁을 받은 글자의 소재지를 찾아 먼저 신도안을 찾았다. 그곳 수양원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글자의 소재지를 수소문했다. 이튿날 조선 초기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가 썼다는 '佛宗佛朴' 네 글자가 새겨진 주춧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선 초 신도안을 천도지로 정하고 10개월 동안 궁궐터를 닦는 과정에서 누군가 새겨놓은 글자로 여겨졌다. 한편으로는 혹세무민하기 위해 일부러 새겨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글자의 내용은 해석하기 애매했다. 불교와 박(朴)씨 성(姓)에 대한 찬양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아전인수적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신도안이 일찍이 천도지로 꼽혀온 천하명당으로 소문난 곳으로 이 터를 차지하고 싶은 이들의 심정과 연결해 보면 그 글자의 뜻이 묘해진다. 공교롭게도 박 씨 성과 관련해 신도안을 처음 천도지로 택하고자 했던 주역 중 한사람이 무학대사였고, 그의 속성(俗姓)이 박 씨였다는 것. 또 이곳에 종단건물을 지은 신흥종교의 교주도 박 씨였으며, 당시의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 역시 같은 성씨였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문구에 대한 해석이 더욱 괴이쩍었다.
두 번째로 오성계곡 너럭바위에 새겨져있다는 '黃牛萬國活南朝鮮 文明開花三千里 領導 朴瞻濟''黃牛如正熙將守 道術運通九萬里'라는 글자를 찾아 나섰다. 한눈에도 오래된 글자는 아니었다. 조잡하게 쓴 글자인데다 내용도 다분히 의도적인 글귀였다.
마지막으로 연천봉 석각(石刻)을 찾아 힘겨운 등반을 해야 했다. 연천봉 정상바위에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는 '方百馬角 口惑禾生'이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이런 글을 참자(讒字)라고 한다.
풀이하자면'482년 후에 나라를 옮긴다'는 뜻이다. 나라가 옮겨간다면 망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조선이 망하고 새 시대가 계룡산에서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인 것이다. 조선은 이보다 37년을 더 지탱했으나 얼추 예언이 맞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굳이 첨언하자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염원하는 백성의 소망을 상징하는 글자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현장을 돌아보고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듯이 내용을 안다고 해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 인간사(人間事)다. 시간이 가면 바위도 마모돼 속살을 드러내듯이, 비밀은 자루 속 송곳처럼 솟아나기 마련이다.
계룡산은 아직도 살아있는 전설을 품고 있다. 상서로운 기운이 신도안을 감싸고 있고, 삼군의 건장한 건아들이 열심히 지신밟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살기 좋은 세상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