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들이 현금영수증제도를 악용해 탈세를 저지르는 구체적인 수법이 'KBS 취재파일' 보도를 통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9일 방영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전화번호로 현금영수증을 허위발행하거나 현금영수증 대신 간이영수증을 발행해 매출 사실을 누락하고, 변호사 계좌와 법인 계좌로 수임료를 분납받아 실제 매출을 과소신고하는 등 소위 사(士) 자들의 기상천외한 탈세수법이 소개됐다.
방송에 따르면 변호사에게 수임을 맡겼다는 주 모씨는 "현금영수증은 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다"며 "하지만 수임료를 납부할땐 사무장이 따로따로 계좌를 써 줘 분할 납부하기는 했다"고 말했다.
다른 소송의뢰인 김 모씨는 "총 500만원을 입금했는데 모두 간이영수증을 지급 받았을 뿐"이라며 "현금영수증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 전문자격사들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도 전문자격사들이 현금영수증 발행누락과 과소매출 신고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직원은 "실제 현금영수증 번호가 정확히 나가는 것은 몇 건 안된다"며 "혹시나 고객이 영수증을 요구해도 현금영수증보단 간이영수증을 떼주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소송의뢰인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의뢰인 8명을 확인해본 결과 현금영수증에 등록된 금액은 실제 의뢰인이 낸 수임금액보다 3250만원 정도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가 메모 등을 통해 현금영수증 발행 금액을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도 포착됐다.
조세전문가들은 받은 돈을 나눠 영수증을 발급하거나, 법인계좌가 아닌 개인계좌로 돈을 받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경률 공인회계사는 "특정 전화번호를 입력하지 않고 010-0000-0000 으로 하게 되면, 의뢰인은 자기 금액이 얼마가 됐는지 확인 못한채 전문직 입장에서만 국세청에 신고했다는 증거만 남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형태의 세금탈루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대한성형외과의사회로부터 유령수술 의혹을 제기 받았다는 모 병원 역시 매출 과소신고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의사 2명이 2년간 벌어들인 매출 120억원 중 1/3 정도만 현금영수증이나 카드로 발행돼 있고, 2/3은 매출 누락이 발생한 것.
이 성형외과 전산망 기록에서도 '카취현' 즉, '카드를 취소하고 현금으로 다시 결제한다'라는 문구나 '반드시 현금을 가져오도록 안내한다'라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현금 거래를 유도하는 정황도 드러났다.
과거 이 성형외과에 근무했다는 직원은 "현금을 유도하고 할인해준다는 식으로 소개하고, 영수증은 달라는 사람에 한해 발급해왔다"며 "일반적인 환자들은 할인 받았기 때문에 굳이 영수증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경률 공인회계사는 "변호사나 병원이 차명계좌로 현금을 받아 현금영수증 액수를 줄이거나 미발행하는 방식은 매우 전형적인 탈세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로 세무 추징을 당해도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14년 전체 세무조사 건수 1만 7033건 가운데, 고발로 이어진 386건은 전체 대비 2.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탈세를 할 수 있으면 하고, 걸리면 운이 없는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문제"라며 "미국은 한국과 달리 탈세를 하면 예외없이 처벌당하고 그 대가는 매우 혹독한게 사실"이라며 한국 사람들의 탈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꼬집었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 270명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를 벌인 끝에 1232억원을 추징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한 지 3년이라는 시간동안 현금영수증 축소발급을 악용한 변호사나 의사들의 탈세를 뿌리 뽑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앞으로 탈루세금을 추징하는 조치 뿐만 아니라 가산세나 형사처벌 강화와 같은 실질적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