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는 최근들어 회계법인과 기업간의 유착으로 인한 '도덕적해이' 사건이 잇따른데 따른 여론의 질타가 확산되자 '외부감사 자유수임제'가 개선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외부감사 자유수임제로 인해 회계법인들이 기업으로부터 일거리를 따내고자 과당경쟁과 저가수주가 만연해지면서 피감사인인 기업과 감사인인 회계법인 사이에 유착관계가 심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기업으로 하여금 회계감사인을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자유수임제를 고수함에 따라 회계감사를 제값까지 주며 원칙대로 받기 싫어하는 기업에게 우월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회계법인의 감사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발생한 삼일과 안진 사태의 근저에는 자유수임제로 인한 기업과 회계법인 간 황제-노예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며 "이같은 주종관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삼일·안진 사태와 같은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이번에 발생한 도덕적해이 논란은 어찌보면 회계업계가 자초한 일"이라며 "이를 반성과 도약의 계기로 삼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일회계법인은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한진해운 주식을 매각하기 전 최은영 회장에게 내부정보를 흘렸다는 구설수에 휩싸여 있다. 삼일은 올초부터 세달동안 한진해운의 예비실사를 맡았었다.
안진회계법인은 조선업계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떠오른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감사의견을 매년 '적정'으로 내놓았다가 지난 3월에야 회사측에 작년도 추정 영업손실 5조5000억원에 대한 재무제표 기재정정을 요구했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자유수임제 하에선 회계법인이 기업으로부터 회계감사 업무를 수주하는 영업활동에 주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돼 어떻게 해서든 기업에 잘 보이도록 노력할 수 밖에 없다"며 "감사인이 소신있는 목소리를 내도록 하기 위해선 감사지정제 범위를 늘리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는 "분식 등 회계부정을 저지르기로 마음먹은 기업을 상대로 외부감사인이 원칙대로 감사하고자 하면 요구되는 자료를 멋대로 빼먹기 일쑤"라면서 "금융당국은 이렇게 회계감사인이 열악한 상황에 놓인 가운데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스스로 선임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계업계와 기업 양측의 공적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회계업계의 도덕적해이를 완벽히 막고 기업에 부실회계의 책임을 명확히 물으려면 법적제재 수준이 보다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은 삼일회계법인의 안경태 회장을 이번주 안에 소환해 최은영 회장과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은 것과 관련해 조사할 예정이다. 조사결과 내부정보 유출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안 회장은 형사처벌 및 회계사자격 정지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또 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 재무제표 기재정정 사건 이후 나온 인력 대거이탈 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구조조정본부 워크아웃팀 핵심인력 수십명이 곧 대거 이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안진 관계자는 "업계 자체적으로 평소에도 인력이동이 잦다"며 "설령 해당 인력이 움직인다고 해도 안진의 업력과 맨파워 등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외부감사 자유수임제는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기업이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하는 제도이며 1980년대 초 처음 도입됐다. 반면 감사지정제는 공정한 감사가 필요한 회사에 대해 외부감사인 자유선임권을 배제하고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하는 제도이다. 자유수임제 도입 전까지는 감사지정제가 국가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시행됐다.
